17國 중 종합평가 점수 하위권
미얀마 등 저개발국 빼면 ‘꼴찌’
해외서 뇌물 등 ‘부패한류’ 전파 “부패 정도는 지난 10년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의 부패는 덩치를 키워가고 있다.”, “한국의 어느 정권도 가족이나 측근이 부정부패와 연루되지 않은 적이 없다.”
우리나라가 아시아 선진국 중 최악의 부패국이라는 평가는 부끄러우면서도 심각한 문제다. 홍콩 정치경제리스크컨설턴시 조사에서 우리나라 부패 점수는 중국, 캄보디아, 미얀마 등과 순위를 다퉜다. 특히 분야별로는 ‘정치권 부패 점수 7등’, ‘민간기업 부패 점수 2등’, ‘부패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점수 2등’으로 참담한 수준이다. “한국의 부패 문화가 아시아 부패 확산에 기여할 수 있다”는 ‘부패 한류(韓流)론’까지 제기됐다.
◆일상 속의 부패 수준
홍콩 정치경제리스크컨설턴시(PERC) 연례 아시아 부패 조사의 가장 큰 특징은 평가 주체가 각국 현지에서 사업을 전개 중인 외국인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자국인보다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이들은 또 각국을 두루 돌며 주재원, 현지법인장 등을 맡는 경우가 많아 국가별 부패 정도를 직접 비교체험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외국 기업인들이 현지에서 정·관·재계와 접촉하며 일상 속에서 체험하는 부패 정도를 평가하는 것이다.
올해 설문 조사에는 각국 상공회의소 외국인 회원 및 세미나 참석자를 중심으로 총 2057명이 대면 또는 이메일로 참여했다. 이들은 정치인, 관료, 사법 및 과세당국, 군대, 감사원 등의 부패 수준을 각각 0∼10점으로 평가했다. 설문에는 정부의 부패 척결 의지와 부패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기업의 뇌물 문제, 기업 내부의 부패 대응 수준까지 포함됐다. 종합 평가는 총 19개 항목의 점수를 종합·산출한 ‘부패 점수’로 이뤄진다.
◆기업 부패 아시아 2등
한국 부패 수준의 종합 점수는 6.98점이다. 총 17개국(미국, 홍콩, 마카오 포함) 중 부패한 정도로는 8등인데 캄보디아, 미얀마 등 저개발국가를 빼면 아시아 최악이다. 이 때문에 홍콩 정치경제리스크컨설턴시는 “한국은 아시아 선진국 중 부패에 가장 취약하다”고 우려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기업 부패 점수가 8.76점으로 아시아 2등이었다. 기업의 뇌물 관행 등이 인도네시아, 필리핀, 중국보다도 팽배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기업 부패가 심각한 곳은 인도(9.17)밖에 없었다. 또 부패 적발시 사법 시스템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집행되는지를 묻는 설문에서는 우리나라가 8.87점으로 캄보디아(8.98)만 빼면 아시아 최악이었다.
반면 국민의 부패에 대한 관대함을 묻는 질문에서 우리나라는 3.98점이란 낮은 점수를 받았다. 부패에 대한 국민 분노와 척결 의지는 강한데 실제 기업 관행과 사법 시스템은 이를 충족하는 데 한참 부족하다는 얘기다.
◆한국, 부패까지 수출?
‘아시아 최악 수준’이라는 외국인들의 우리나라 청렴도에 대한 차가운 평가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 정도는 아닌데…”라고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지만 평가 이유를 접하면 수긍이 간다.
홍콩 정치경제리스크컨설턴시는 단적으로 “지난 20년간 한국 10대 재벌 중 SK를 포함해 6곳이 유죄선고를 받았는데 형기를 마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벌 총수는 유죄를 선고받아도 집행유예나 특별사면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풀려나 ‘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추문 의혹으로 인한 사임 사건도 만연한 부패의 한 실상을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했다.
이명박정부가 역점 추진한 국민권익위원회 등의 부패방지·단속 활동도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비고위층을 대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지만 최고위층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했으며 국민신뢰도 얻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과 관료 부패 문제의 경우 국회의원 등 정치인 부패(7.74)가 중앙공무원(6.85)이나 지방자치단체 의원(5.63)보다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개발허가(7.87)에서 부패가 만연한 것으로 분석됐고, 군(4.98), 세무(5.35), 복지·환경당국(5.13)은 상대적으로 부패가 낮은 수준인 것으로 평가됐다. 한국의 부패가 아시아를 오염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도 부패에 관대한 윤리의식을 갖고 사업을 하면서 아시아 일대에 부패 문화를 퍼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캄보디아와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시장 등에 한국 기업이 활발하게 진출하면서 이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기업들도 한국 기업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의 부패 문화를 배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박성준·정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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