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병변 1급 장애인인데도 "재심사 받아오라… 기다려라"
절차 까다로워 번번이 포기 “내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1시간 동안만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돌봐 줄 활동보조인이 있었다면 화를 면할 수 있었을 텐데….”
지난해 10월29일 경기도 파주시 금촌동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던 박지훈(당시 11)군과 누나 지우(〃 13)양이 화마에 갇혔다.
뒤늦게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진 지우는 그러나 깨어나지 못하고 사건 발생 9일 만에 가족 곁을 떠났다. 혼수상태이던 지훈이도 한 달여 만에 누나의 뒤를 따라갔다. 이 남매는 부모가 일하러 나간 사이 음식을 데워 먹기 위해 전자레인지를 작동시켰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지난달 22일 금쪽 같은 남매를 하늘나라로 보낸 뒤 고통 속에 지내고 있는 어머니 김정미(44)씨를 만났다. 아이들의 얼굴이 어른거려 살던 아파트에서는 이사했지만 그는 여전히 남매의 흔적이 남아 있는 파주에 살고 있었다. 초췌한 모습의 김씨는 그간의 심경을 묻자 복받치는 설움 때문인지 제대로 말문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재작년 겨울방학 때 지우가 동생을 혼자 돌보는 것을 너무 힘들어 해 주민센터에 활동보조인을 신청했었다”면서 “하지만 주민센터는 겨울방학 내내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토로했다.
“지훈이가 뇌병변 1급 장애인으로 등록돼 있는데도 장애등급 심사를 다시 받아오라고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로워 번번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김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아이들을 남겨두고 일을 하러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자 오전에만 일하는 자리를 얻었다. 그러다 지난해 5월부터는 오후 6시에 일이 끝나는 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대인 오후 4∼5시부터 1∼2시간의 공백이 생겼다.
김씨는 “화재 당시 살고 있던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가 월셋집을 알아보느라 귀가가 늦었고, 남편은 마침 야근일이었다”면서 “평소 지우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동생을 돌보다 재우는 때가 많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뇌병변, 자폐장애, 지적장애 등의 중복장애를 앓고 있던 지훈이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혼자서 밥을 먹지도 못했다. 누구보다도 보호자의 도움이 절실했다.
평소 학습부진 등으로 진료를 받았던 지우는 특수학교에 진학해 동생을 보살폈다. 동생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런 지우는 불이 났을 때도 동생 곁에 꼭 붙어 있었다.
김씨는 “지우는 학교에서도 쉬는 시간마다 동생 교실을 찾아가 잘 지내는지 확인할 정도로 동생을 아꼈다”면서 “피지도 못하고 떠난 우리 아이들이지만 다른 발달장애인들이 좀더 편하게 지내는 걸 보면 저 세상에서라도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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