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현장에서 미장일을 하는 홍모(56)씨는 지난해 2월부터 8월까지 서울 종로구 구기동의 한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하지만 일이 끝난 뒤에도 3개월치 임금 780만원을 받지 못했다. 담당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사무실 직원은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참다 못해 홍씨가 서울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내자 업체는 300만원만 지급했다. 나머지 480만원은 최대한 빨리 주겠다는 말만 반복할 뿐 5개월째 깜깜무소식이다. 홍씨는 최근 다시 서울고용노동청을 찾아가 고소장을 제출했다. 홍씨는 “한 달 벌어서 한 달 먹고사는데, 밀린 임금을 주지 않아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설을 일주일 앞둔 24일 서울 중구 장교동 서울고용노동청 민원인 대기실에는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찾아온 근로자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지치고 초조한 모습이었다. 대기실 벽 한쪽에는 임금체불 사업주 명단이 붙어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9일부터 29일까지를 ‘설 대비 체불임금 청산집중 지도기간’으로 정하고 전국 47개 고용노동관서에 평일 근무를 오후 9시까지 연장하고, 휴일에도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고용부는 체불임금과 퇴직금 미지급 등에 대해 진정을 접수하면 사실관계를 조사해 체불임금을 확정하고 사업주에게 지급지시를 하는 절차를 거친다.
최근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일하다 해고된 김모(57)씨도 이날 고용청을 찾았다. 관리업체는 아파트와의 재계약에 실패하자 김씨를 해고하고 월급과 퇴직금을 주지 않았다. 김씨는 업주와 드잡이하기도 했다. 그는 3개월 전 진정을 접수해 이날 결과를 통보받았다. 고용청은 업주에게 김씨의 밀린 임금 199만원과 퇴직금 410만원, 해직예고수당 260만원을 31일까지 지급하라고 시정지시했다. 김씨는 “이제 시작”이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업주가 기간 내에 돈을 안 줄 것이 뻔하다”면서 “업주 측에서 내가 지쳐 떨어져 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2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임금을 받지 못해 진정을 낸 근로자가 무려 26만6506명에 달했다. 체불액은 1조1929억7900만원이다. 이를 업종별로 보면 제조업이 3904억원으로 체불임금이 가장 많았고, 건설업이 2605억으로 그 뒤를 이었다. 업체 규모별로는 5∼30인 미만 사업장이 5049억원으로 전체의 42.3%를 차지했다.
고용부는 일시적인 경영난을 겪는 사업장의 경우 재직중 근로자에게 생계비를 빌려주고 사업주를 대상으로 융자금을 지원한다.
서울고용노동청 관계자는 “최근 임금체불 사업자의 경우 악덕업주보다는 임금을 줄 수 없는 상황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고의적이고 상습적인 체불 사업자에 대해서는 검찰과 협의해 사법처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사진=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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