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제각각인데 환자 처방 천편일률 박근혜 대통령께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가 지났습니다. 대통령께서 추진하시는 공공기관 개혁도 얼음 녹듯 풀렸으면 합니다. 도덕적 해이로 얼룩진 방만 경영은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할 국가적 과제입니다. 하지만 명분과 대의가 옳다 하더라도 목적지에 이르는 지도가 부실하다면 길을 헤매게 마련입니다. 혹여 개혁의 로드맵과 실행계획이 불합리한 것은 없는지 찬찬히 살피셔야 합니다. 그런 충정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올리고자 합니다.
저는 강원도 태백의 석탄공사 장성광업소 막장에서 일하는 허준우입니다. 쉰이 넘도록 근무하다보니 어느덧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렸군요. 저는 매일 아침 땅속으로 출근합니다. 장화와 방진 마스크를 한 채 터널을 걷고 초고속 케이지에 몸을 싣습니다. 수직으로 하강해 철제 인차로 두 번 갈아타면 지하 1000m의 막장에 이른답니다. 한겨울에도 지구의 열기로 섭씨 30도를 웃도는 곳이죠. 새까만 어둠이 가득한 막장에서 저는 희망을 가슴에 채웁니다. 밤이 어두울수록 별은 더 빛나는 법이니까요.
요즘 이곳 막장에도 지상의 흉흉한 소식이 들려옵니다. 벌써 직원을 감축한다는 얘기가 나돌더군요. 대한석탄공사는 1989년 석탄합리화정책 이후 8번의 구조조정으로 몸집을 크게 줄였습니다. 석탄 생산량의 80%가 감축됐고 직원 열 명 중 아홉이 직장을 떠났습니다. 잇단 감축으로 값비싼 생산시설이 남아도는 마당에 몸집만 자꾸 줄인다고 경영이 좋아지겠습니까. 석탄공사는 탄광 문을 모두 닫더라도 연간 수백억원의 적자가 불가피합니다. 금융부채에 따른 이자만 매년 480억원씩 돌아옵니다. 축소 경영보다는 세계적인 채탄 기술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한국광물자원공사 등 유사기관과의 통폐합도 고려해야 합니다.
배연국 논설위원 |
석탄공사가 어렵게 확보한 몽골 홋고르 탄광이 외국에 팔린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5억t의 매장량을 지닌 홋고르 탄광은 ‘한국 첫 공기업’ 석탄공사의 미래입니다. 3년 전 지분 51%를 확보해 직접 개발의 길을 열었을 때 저는 만세를 불렀습니다. 광산까지 도로만 놓는다면 지표면에서 곧바로 유연탄을 캘 수 있다고 합니다. 수십조원의 경제가치를 갖고 있지만 그간 자금 부족으로 방치되다 이제 바람 앞의 등불이 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자원 개발은 국부와 직결되는 사안입니다. 중국과 일본은 국부를 늘리기 위해 바다를 뒤지고 멀리 아프리카까지 달려갑니다. 에너지 자원은 미래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습니다. 당장 급하다고 거위 배를 갈라서야 되겠습니까.
대통령께선 ‘호랑이 정신’으로 공공기관 개혁에 최선을 다하라고 하십니다. 백번 옳은 말씀입니다. 지금 공공기관은 암에 걸린 환자나 다름없습니다. 개혁의 지향점은 그런 공공기관을 건강한 기업으로 되돌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환자를 살리자면 암덩어리를 도려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암의 종류와 증상이 천태만상인 만큼 진단과 처방 역시 환자 특성에 맞춰야 합니다. 어떤 경우든 호랑이가 환자를 무는 일이 생겨선 안 됩니다.
대통령님,
석탄으로 만들어지는 연탄은 불을 피우려면 처음에 구멍을 잘 맞추어야 합니다. 공공기관 개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개혁의 온기가 연탄불처럼 공직사회에 두루 퍼지기를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배연국 논설위원
※탄광근로자 허준우는 공공기관 개혁의 문제점을 밝히기 위해 임의로 설정한 가상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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