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보다 저렴한 가격. 국내에 없는 물품을 소유한다는 만족감. 소비자들이 이런 매력 때문에 해외 물품을 직접구매하는 이른바 ‘직구’에 빠져들고 있다. 하지만, 직접구매가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도한 배송료 요구, 환급거부, 배송지연, 배송중 분실, 제품 파손 등 직접구매가 늘면서 소비자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해외 직접구매의 실태와 문제점, 대책을 3회에 걸쳐 짚어봤다.
주부 김미현(38)씨는 안방에서 해외쇼핑을 즐기는 ‘직구족’이다. 김씨는 최근 백화점에서 200만원대인 A브랜드의 가방을 배송비까지 포함해 120만원대에 구입했다. 8살 된 딸에게 입힐 해외 브랜드 옷도 국내 가격보다 60%나 저렴하게 구입했다. 김씨는 “국내 백화점의 세일 가격보다 해외 현지 판매가가 훨씬 싸다”며 “노력 대비 합리적 가격이라는 보상이 돌아오는 최적의 쇼핑”이라고 만족해했다.
김씨처럼 해외 직접구매에 나서는 소비자가 최근 크게 늘고 있다. 공식 수입원을 통해 들어온 제품 가격보다 상당히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고 수입되지 않는 물건도 살 수 있는 장점 때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품 가격이 150달러에서 200달러로 늘어난 것도 직접 구매를 촉진하고 있다.
하지만, 직접구매가 늘면서 국내 백화점 등은 울상이다. 가뜩이나 경기침체와 가계부채 증가로 내수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해외 직접구매가 내수시장을 갉아먹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을 통한 해외 직접구매 규모는 1115만9000건, 1조1029억원이다. 2012년(794만4000건, 7억720만달러)보다 건수는 40%가량, 금액은 47% 급증했다. 유통업계는 관세청에 잡히지 않은 소액 구매까지 더하면 실제 시장은 이보다 두 배가량 될 것으로 추정한다. 비씨카드가 최근 1년 이내 해외물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9%가 직접구매를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공항세관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인터넷 쇼핑을 통한 국제 특송화물의 국내 반입량은 1003만여건으로 2012년보다 40% 이상 증가했다. 이는 전체 특송화물(1446만8000건)의 70%에 육박한다.
구매품목도 다양하다. 책이나 건강기능식품 위주에서 의류, 패션잡화, 유아용품, 화장품, 식품, 주방용품, 개인생활용품 등 범위가 확대됐다. 해외 쇼핑몰 사이트는 한국어 지원과 무료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며 국내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허경옥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는 “한국 시장에서는 비싸야 팔린다는 고가 정책이 자리 잡으면서 수입 브랜드의 가격이 현지보다 너무 비싼 측면이 있다”며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가 해외 직접구매로 몰리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내수 활성화 ‘빨간불’
해외 직접구매가 늘면서 백화점 매출 증가세는 눈에 띄게 둔화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2년 백화점 매출은 전년 대비 -0.3%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지난해도 정기세일이 있던 1월(-8.2%), 4월(-1.9%), 7월(-2.1%), 10월(-2.2%) 매출이 전년보다 감소했다.
해외 직접구매는 앞으로도 국내 유통업체에 위협적인 존재가 될 전망이다.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직접구매는 연평균 50%씩 늘어 5년 후 8조원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영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내수시장 전체 규모가 커지지 않는 한 기존 유통채널들에게는 시련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직접구매는 국내 소비가 줄면서 내수 활성화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가뜩이나 가계부채에 짓눌려 취약한 국내 소비기반이 해외 직접구매로 악화할 수 있다. 내수활성화를 전면에 앞세운 박근혜정부는 최근 해외 직구 열풍의 심각성을 인식해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김기환 유통전문기자 k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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