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발인…유족들 "장례 최대한 간소하게" 부의금도 사양 '끝까지 비겁하지 않았다.'
사고 한달 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가족 품에 돌아온 세월호 양대홍 사무장(45)의 빈소에는 현수막이 내걸려 그의 강한 의로움을 대변했다.
'아이들을 구하러 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을 아내에게 남기고 침몰하는 배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가 숨진 세월호 사무장 양대홍(45)씨의 시신이 사고 한 달 하고도 하루가 지난 16일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 품에 안겼다.
양 사무장의 시신은 16일 오전 진도에서 인천으로 옮겨져 길병원에 안치됐다.
고인의 큰 형인 대환(56)씨는 "어젯밤 꿈에 동생이 나왔는데 '물속에 너무 오래 있어서 몸이 불어 힘들다'고 했다"며 "얼마나 괴로웠을까, 가슴이 미어진다"고 눈물을 터뜨렸다.
대환씨는 "아직도 실종자가 20명 남았다고 하는데 다 구하고 마지막에 돌아오지…, 그 분들한테도 죄스럽다"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5남매 중 막내인 고인은 '책임감이 강하고 의로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동생은 책임감이 강해서 일 처리를 잘했고 항상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성품이었다"라며 "동생이라면 사고 여객선 안에서 뭔가를 꼭 했을 거라 믿었고 생존자 중 동생 도움을 받아 구조됐다는 분들을 만나 얘기를 듣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동생이 힘들게 창문을 열어서 아르바이트생만 밖으로 내보내고 자신은 아이들 구조한다며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가족 된 심정으론 '그때 같이 나왔어야지' 하고 아쉬운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양 사무장은 세월호 3층 선원 식당칸 싱크대를 밟고 올라가 창문을 열고서 아르바이트생 송모(19)군을 배 밖으로 내보내 살렸다는 생존자 증언이 있다.
조리 담당 김모씨도 양 사무장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대환씨는 "청각장애인이신 어머니가 막내가 올 때가 됐는데 안온다며 계속 찾으신다"며 "아직도 막내 아들의 죽음을 모르는 어머니가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동생이 정이 많아 어머니랑 가장 친했고 둘도 없는 효자였다"며 "건강도 안 좋으신데 충격받으실까 봐 사실대로 말씀드릴 수가 없다. 장례를 치르고 나면 '막내가 배 고치러 다른 나라에 갔다'고 말하려고 한다"고 했다.
대환씨는 "사고 2개월 전 동생이 전에 다니는 직장에서 다시 오라고 연락이 왔었는데, 그때 다시 돌아가라고 할 것을 얼버무린 게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다"며 고개를 떨궜다.
유족들은 생전 검소한 고인을 기억하며 장례를 최대한 간소하게 치르기로 했다. 부의금도 정중히 사양하기로 했다.
유족들은 그의 의로운 죽음을 기리기 위해 빈소 영정 위에 '사무장 양대홍은 끝까지 비겁하지 않았다'는 현수막을 걸었다.
오전 빈소에는 유족, 친지들이 자리를 지켰으며 일반 조문객들이 간간히 다녀갔다.
발인식은 18일로 결정됐다. 고인의 유해는 부평승화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양 사무장은 세월호 침몰 당시 "수협 통장에 돈이 좀 있으니 큰 아들 학비 내라.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 한다"고 아내와 마지막 통화를 서둘러 마치고 침몰하는 배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세월호 고위 승무원 가운데 유일하게 탈출하지 않고 승객 구조를 위해 배를 지키다가 끝내 숨졌다.
양 사무장의 희생정신이 알려지자 온라인상에서는 '잊어선 안 될 세월호 의인'이라며 의사자로 선정해야 한다는 지지의 글이 이어졌다.
인천시 서구는 준비를 마치는 대로 다음 주중 양 사무장에 대한 의사자 선정을 보건복지부에 신청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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