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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아이’ 그림으로 형상화… “사람들에게 위로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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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6-23 20:13:26 수정 : 2014-06-23 23: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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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개인전 여는 배우 출신 화가 김현정
인형 하나를 집어 든 순간 왠지 눈물이 핑 돌았다. 아련한 어린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늘상 동생에게 인형을 양보해야만 했던 장면들이 스쳐지나갔다. 애써 늘상 “그래 나는 인형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라며 동생에게 인형을 건네주지 않았던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인형을 좋아하면서도 언니라는 자존심에 자신을 내동댕이쳐 버린 것이다. 1999년 데뷔해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를 괴롭히는 ‘장 캡틴’으로 분하는 등 다수의 드라마와 연극, 영화 등에 출연했던 배우 출신 화가 김현정(35)은 그렇게 유년 시절을 다시 만나게 된다.

 

“연기를 하면서 제가 화를 낼 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짜증으로 화를 대신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됐지요. 평소에 화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거죠. 그 뒤로 억눌린 제 감정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인형을 동생에게 넘겨주면서도 속에선 화를 꾹 참았던 것이지요.”

그는 심리상담 전문가를 통해 그것이 성장하지 못한 내면아이(inner child)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인형치료법을 통해 자신의 내면아이와 온전히 마주한 것이다. 배우로선 한창 물이 오른 시기였다. 한 편의 연극과 운명적 조우를 한 것도 이 즈음이다.

산 정상에 우뚝선 인형의 모습이 색다르게 다가오는 ‘랄라 독립도’. 비단과 한지에 각각 그려진 그림이 하나로 겹치면서 깊은 맛을 더해주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연극 ‘나비’ 출연 섭외가 들어왔어요. 주위에선 모두들 반대를 했지요. 지금은 대중적 인기를 더 관리할 시기라고요. 하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의 내면아이를 보듬어 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결단을 했어요.”

그는 5년간 위안부 할머니들의 내면아이와 함께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내면아이와도 더 친숙해지는 계기가 됐다.

“이젠 성장이 중단된 제 자신의 내면아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저의 내면아이를 ‘랄라’라는 인형에 투영해서 그림을 그려 나갔습니다. 성장일기 같은 것이지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는 자신의 내면아이 ‘랄라’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었다. 2009년부터는 배우로서의 삶에 브레이크를 걸고 과감하게 미술사, 미술이론 등을 배우며 그림을 그린 이유다.

“제 그림은 저의 내면아이를 세심하게 돌보고 양육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정서라고 할 수 있지요. 눈물로 정화된 제 자신의 내면아이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작가 내면의 치유과정이 예술작업으로 승화된 셈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내면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내면아이의 양육 과정을 정서적으로 형상화한 작업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내면아이의 정서적 예민성을 표현하기 위해 세밀하고 화려한 공필화 기법과 작가의 느낌을 강조하는 사의화 기법을 적절히 혼합해 구사하고 있다. 동양의 전통회화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미학자와 미술사가들이 그의 그림에 주목하는 이유다.

“왜 굳이 지금 동양화냐고 말하는 이들이 많아요.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연극을 할 때도 번역극과 창작극은 느낌이 다르잖아요. 번역극의 대사는 왠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동양화는 꼭 창작극 같은 느낌이었어요. 무엇보다 전통 계승이 제대로 안 되고 끊기면서 전통이 오히려 낯설게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제게는 도리어 신선했고 도전할 만하다고 느껴졌어요.” 동양화가 이젠 블루오션이란 얘기다.

그는 미대에 다시 입학해서 동양화를 배워 볼까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미술계 지인의 만류로 생각을 접었다. 서양화가 대세라 제대로 동양화법을 익힐 분위기라 아니라는 충고를 받아들였다. 대신 그는 ‘동양화 젖동냥’에 나섰다.

모두가 외면하는 전통화법에서 자신의 길을 찾고 있는 김현정 작가. 그는 “맥이 끊기면서 낯설게 느껴지는 전통이 오히려 이 시대의 블루오션”이라고 강조한다.
이제원 기자
“중국 문화계 최고 원로 펑치용(馮其庸) 선생을 비롯해 위훼이(余輝) 베이징 고궁박물원 학예연구실장, 베이징대학 예술학과 펑펑(彭鋒) 교수 등 중국 미술계 원로와 중진들을 찾아 배움을 청했어요. 예술적 테크닉은 물론 인문학적 배경까지 얻는 계기가 됐지요. 고미술부터 현대 팝아트까지 가리지 않고 박물관, 미술관, 옥션, 갤러리를 찾아다니면서 안목도 키웠어요.”

그는 송대 화조화, 명대 초상화법 등을 당시 화법에 맞춰 그림을 그리면서 나름의 화법을 찾아 나갔다. 한지에 1차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비단을 붙여 다시 그리는 방식이다. 바탕색이 배어나오면서 부드럽고 그윽한 회화맛을 느끼게 해준다. 일종의 진화된 배체기법이라 할 수 있다. 전통자수를 그림에 끌어들이기도 했다. 중요 포인트에 자수를 놓아 생생한 색감과 볼륨감을 주기도 한다.

“펑치용 선생은 우수한 전통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절실한 그림을 그리라고 충고를 해 주셨습니다. 제게 전통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해 주신 분이지요.”

그는 오는 11월 8일부터 19일까지 베이징 금일미술관에서 열리는 한국작가 ‘삼인행(三人行)’ 초대전에 참여한다. 백남준, 이왈종 화백과 함께 하는 전시다. 이에 앞서 7월 4일까지 안국동 갤러리 아트링크에서 개인전도 갖는다. 전시장엔 돋보기가 비치돼 있다. 정교하게 그려진 그의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웃고 있는 잠자리 등 희로애락의 표정은 압권이다. 내면아이 ‘랄라’는 늘상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위안부 자화상이 그려진 그림속 낙관엔 애국가 가사가 깨알같이 쓰여져 있다.

“제 그림이 우리 시대 ‘어른아이’에게 내면아이의 존재를 알려 스스로 힐링하는 기쁨을 안겨주었으면 합니다. 저 자신을 포함해 사람들에게 위안과 명상의 시간을 주는 그림을 그려 나갈 겁니다.”

그는 요즘도 인형 ‘랄라’를 곁에 두고 작업을 한다. 처음엔 성인으로서 어린아이처럼 인형을 가지고 논다는 것이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됐다. 그러나 랄라는 그의 내면에 기쁨이 넘치게 했다. 센 척하던 얼굴에서 경직된 근육이 풀리고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책을 읽을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늘 그의 곁엔 랄라가 있다. 랄라와의 감성적 교류가 그림이 됐다.

“중국 전시 준비로 요즘엔 4시간도 채 못 자고 작업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벌써 몸져 누웠을 겁니다.” 랄라는 이제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02)738-0738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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