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 속 고래’ 국민연금이 국민경제에 끼칠 영향을 줄이려면 ‘바다’(해외시장)로 나가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해외투자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인력, 정보, 노하우 모두 부족하다는 게 다수 전문가의 공통된 견해다. 무엇보다 해외시장에 밝은 전문가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히딩크를 축구감독으로 뽑았듯 외국인 전문가라도 모셔와야 한다”(최창원 자산운용전문가)는 주장도 나온다. 같은 맥락에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문성 보강도 필요하다는 주장과 논의가 무성하다.
해외투자 확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하지만 이런 당위성만으로 섣불리 투자를 확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13일 “중요한 건 해외시장에서도 손실을 내지 않고 기금운용을 잘할 수 있겠느냐는 것인데 그러기엔 해외시장을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한국연금학회장을 맡고 있는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도 “해외로 진출하려면 해외 자본시장에 밝은 전문가가 있어야 하는데 없다. 이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예컨대 뉴욕증권시장에 한국계가 없다. 한국계 매니저라도 있다면 믿고 맡길 수 있을 텐데 없다”고 했다.
이에 따라 해외시장 본격 투자에 앞서 전문인력과 위험관리시스템 등 투자 인프라부터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김 교수는 “간접투자조차도 전문가들이 많아야 효과적인데 지금은 전문가가 없으니 부동산 매입 위주”라고 말했다. 남 연구위원은 “인력을 확충해 운용 실무 조직인 기금운용본부를 별도 공사로 분리하는 방안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도 해외투자를 꾸준히 준비하고는 있다.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투자 인프라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닌 만큼 2000년대 중반부터 오랜 시간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는데 늘 부족한 건 있다”고 말했다. 기금운용본부는 현재 해외투자 창구로 뉴욕과 런던에 해외사무소를 두고 있는데 인력이 뉴욕 5명, 런던 4명에 불과하다.
◆대표성 vs 전문성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최고의사결정기구는 기금운용위원회다. 위원장을 포함해 모두 20명이며 위원 구성은 법으로 정해져 있다.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과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차관 등 정부대표 6명은 당연직, 나머지 14명은 위촉직이다.
위촉직은 ▲경총, 중소기업중앙회, 전경련이 추천하는 사용자 대표 3명 ▲한국노총, 민주노총, 공공노조연맹이 추천하는 근로자 대표 3명 ▲농협중앙회, 수협중앙회, 한국공인회계사회, 한국외식업중앙회,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추천하는 지역가입자 대표 6명과 전문가 2명이다. 정부 인사를 빼면 거의 연금보험가입자 대표들로 구성돼 있다. 전문가 2명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으로, 자산운용 전문가로 보기는 어렵다.
대표성은 물론 중요하다. “대표성과 전문성을 비교한다면 국민연금 주인으로서의 대표자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김 교수는 “대표성이란 기금이 내 것이란 주인의식을 갖고 안전하게 운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혜린 보건복지부 국민연금재정과 사무관은 “투자계획이 전문위원회 검토를 거쳐 기금운용위원회에 올라가므로 전문성 부족이 큰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전문성을 보강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대표성을 강조하는 이들도 전문성 보강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위원회 자체를 투자전문가로 구성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운용에 있어 전문적 판단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도 “위원회가 대표성은 잘 구현돼 있지만 전문성이 요구되는 투자결정을 하기엔 취약한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남 연구위원은 “현 가입자 대표 체제에서 전문성을 보강하는 방안이 합리적”이라며 “전문가 임기를 좀 더 늘리거나, 대표들이 적어도 3년 이상 재임하면서 준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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