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보’는 서강대 교수를 지낸 이근삼(1929~2003) 극작가가 1971년 발표한 희곡으로 기독교 성극이다. 안현수 목사는 신학대 재학 중 연극 '율보'의 연출과 주인공 율보 배역을 맡아 열연해 지금도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연극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율보처럼 말을 더듬기도 했다”고 회고하는 안 목사는 율보에 대해 “약간은 바보스러워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고 이용도 당하지만 착하고 순수한 캐릭터로 이 시대를 살면서 지금도 정말 보고 싶고 그리운 친구”라고 말했다.
‘율보 이야기’는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를 비롯해 ‘가족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 ‘추억 이야기’ ‘군대 이야기’ ‘북한 이야기’ ‘세상 이야기’ ‘담장 안 이야기’ 순으로 구성됐다.
안 목사는 서문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 서울 광나루 강가에서 빠져 죽을 뻔했던 일과 교통사고로 숨질 뻔한 일들을 소개하면서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시련이 있다”면서 시련 극복의 의미를 전했다.
TV나 신문에서 자주 보던 유명 정치인과 연예인, 프로운동선수부터 법무부 교정위원이자 서울구치소 기독교분과위원장으로서 교도소에 복역하는 사람들과의 특별한 만남도 잔잔한 감동을 준다. 특히 교도소 교정선교를 하며 나눈 수감자들과의 믿음과 사랑의 결과물인 ‘회심 편지’가 원문 그대로 수록돼 있어 감동을 더한다.
‘우리 시대의 참 종교인’으로 존경받는 안현수 수지광성교회 담임목사가 신앙수필집 ‘율보 이야기’를 펴냈다. |
글 중에는 먼저 유명을 달리한 형과 동생 이야기, 안개꽃을 특히 좋아했던 국희 이야기, 학칙 위반으로 학교를 떠나게 된 학생들과 찍은 ‘퇴학기념사진’ 이야기, 대를 이어 목회자의 길을 선택한 아들 이야기, 방북 중에 만난 북한 사람 이야기, 국회의원이 된 군대 동기 이야기, 연쇄살인 등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대기 중인 죄수들 이야기 등 사연 하나하나가 뭉클하다.
여성 수감자들을 위한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구치소에 갔다가 옛 제자를 만난 일화도 가슴 찡하다. 집회 장소에서 청소를 하던 여자 수감자가 안 목사에게 다가와 “목사님! 저는 여고 3학년 때 목사님께 배운 이수영(가명)입니다. 제가 목사님이 해주신 장학금으로 공부한 학생입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안 목사는 아무 말도 묻지 않고 “그래, 먼저 인사해주어서 고맙다”고 말하면서 제자를 위해 기도해 주었다.
안 목사의 책은 특히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옥새전각장 세불 민홍규씨와의 인연도 소개해 눈길을 끈다. 책에 의하면, 민홍규씨는 국새사건 직전 발생한 의문의 교통사고로 수감생활 내내 휠체어 신세를 졌고, 눕기도 어려운 좁은 감방에서 한자 옥편을 만들었다.
안 목사는 “무료하고 힘든 감방생활에서도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려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장인의 모습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면서 그 후 민 선생과 서신으로 교제를 나누었다고 밝혔다.
안현수 목사가 2014년 9월 13일 밤 3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세불 민홍규씨의 어깨에 두 손을 올려 축도를 하고 있다. 이날 현장에는 대한민국 3대 국새를 조각한 이긍범 조각가를 비롯해 민씨의 제자 등 30여명이 나와 민씨를 반겼다. |
안현수 목사는 장로회신학대 기독교교육학과와 동대학원(교역학석사), 한양대 대학원(교육학석사), 미국 멕코믹신학교(목회학박사)를 졸업했다. 서울대 종교학과 종교교사 과정에서 공부했고, 정신여자중고교 교목과 영신여고 교목실장 및 상담실장, 인덕대·숭실대·서울여대 강사를 역임했다.
안현수 목사(왼쪽 맨 끝)가 2014년 11월 22일 경기도 이천시 민홍규 공방에서 열린 세불민홍규후원회(회장 황종국 변호사) 결성을 위한 2차 예비모임에 참석했다. 등을 보이고 앉은 이가 세불 민홍규씨다. |
번역서 ‘성경 끌어안기’를 비롯해 수필집 ‘사랑 전문점 이야기’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 ‘사랑탐지기’ ‘아름다운 거짓말’과 유머집 ‘웃음 전문점 이야기’를 펴냈으며, 서울특별시장·법무부 장관 표창에 이어 2010년에는 북한돕기와 북한선교에 대한 꾸준한 노력이 인정돼 ‘제14회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을 수상했다.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은 정일형·이태영 부부의 활동과 뜻을 기리기 위해 1997년 제정된 상으로 사회봉사 활동이나 평화통일에 앞장 선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하고 있다.
당시 안 목사는 수상 소감에서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들이 남쪽 교회가 뭐 했느냐고 물을 것이기에 북한 선교는 누군가는 해야 한다”면서 “이 상은 더 희생하라는 뜻으로 알고 더욱 열심히 사역하겠다”고 말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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