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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중고' 겪는 중산층…'나라 허리'가 꺾인다

입력 : 2015-03-12 06:00:00 수정 : 2015-03-12 09: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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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앞지른 지출에 중산층 세부담 과중…‘미래’가 더 불안하다
서울의 한 중견기업에서 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한모(48)씨는 흔히 ‘중산층’이라 불릴 만하다. 연봉이 6500만원에 이르고 본인 명의 아파트도 6억원대다. 하지만 정작 한씨는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씨는 “매달 들어가는 돈으로 빠듯하게 먹고사는데 중산층이라니 어불성설”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한씨는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4학년인 두 아이 교육비로만 한 달에 120만원가량 쓴다. 아파트 대출금도 매달 130만원가량 꼬박꼬박 내야 한다. 여기에 자동차 할부금, 기름값, 연금보험, 생활비까지 빼고 나면 여윳돈은 거의 없다.

한씨는 “이번 달에 들어온 연말정산도 작년에 비해 60만원가량 깎였다”면서 “정부는 우리 같은 사람을 중산층으로 분류하며 혜택은 줄이고, 세부담만 늘리고 있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씨는 갈수록 궁핍해 가는 우리나라 중산층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정부가 정의 내린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 집단은 경제적 어려움과 빈부 격차가 가장 큰 걱정이고, 앞으로 중산층은 줄고 빈곤층이 늘어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주거비와 교육비, 가계부채, 세부담 등이 ‘대한민국 허리’를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중산층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노력보다는 ‘70% 복원’만 주장하고 있다.

◆교육·주거비에 세금 부담도 급증… 중산층 ‘삼중고’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우리나라 중산층 규모는 전체 가구의 67.1%에 달한다. 2008년 63.1%에서 2011년 64%, 2012년 65%로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수치만 보면 ‘중산층 70% 복원’이 눈앞에 다가왔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소득은 늘었지만 전월세 값 상승과 과도한 교육비 등으로 실제 중산층 삶의 질은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우리나라 중산층 삶의 질 변화’에 따르면 중산층 소득은 1990년 82만원에서 2013년 384만원으로 증가했다. 소득은 늘었지만 지출의 증가 폭이 더 컸다. 전체 소비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11.9%에서 12.8%로 상승했다. 특히 전세보증금은 890만원에서 1억1707만원으로 13배나 뛰었다. 연평균 증가율 11.8%로, 중산층의 소득증가율(7%)보다 5%포인트가량 높다.

집값뿐 아니라 교육비 증가도 컸다. 각종 학원비, 과외비에 들어가는 지출은 1990년 13.4%에서 2013년에는 20.9%까지 치솟았다.

최성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산층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소득 개선도 필요하나 주거 및 교육비 지출 부담을 완화하는 한편 여가활동을 통한 소비확대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거·교육비에 허리가 휘는 중산층은 세금 부담까지 떠안고 있다. 지난해 중산층 세금 증가율은 고소득층보다 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분위별로 따졌을 때 중간층(40∼60%)인 3분위 가계의 지난해 월평균 경상조세 지출액은 8만3385원으로, 전년대비 18.8%나 급증했다.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계의 증가율은 3%에 불과했다. 

◆중산층 의식 소멸… “나는 빈곤층이다”


더 큰 문제는 객관적 지표로 중산층으로 분류된 사람들의 상당수가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1980년대 후반 전체 인구의 60∼80%가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여겼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42%, 2013년에는 20.2%로 뚝 떨어졌다.

2013년 한국사회학회 조사 결과 100㎡ 이상의 주택에 살고, 우리나라 평균 소득의 90% 이상을 벌며, 전문대졸 이상으로 반전문적 직업을 가진 ‘핵심적 중산층’도 33.3%만이 자신들을 중산층으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상황과 미래에 대한 비관적 인식이 중산층 의식 소멸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민주정책연구원에서 열린 ‘당신은 중산층입니까’ 포럼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가 3년 전에 비해 좋아졌느냐’는 데 대해서는 22.2%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나빠졌다’는 응답은 28.1%, ‘변화없다’는 49.7%에 달했다. 나라 경제에 대한 비관적 전망은 개인 삶에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3년 후 개인의 경제생활 변화에 대해 53.8%가 ‘나빠지거나 변화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오는 자학증상으로 해석한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중산층에 대한 희망격차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며 “실제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들도 자신을 빈곤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상대적 박탈에서 오는 새로운 불평등”이라고 말했다.

세종=안용성 기자 ysah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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