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11시30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역 AK프라자 옆 ‘무한돌봄 정 나눔터’. 유리벽에는 ‘메르스 감염을 막기 위해 부득이 문을 닫게 됐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나눔터 안에는 노숙인들을 맞이하던 의자가 식탁 위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었다. 매일 식사하려는 노숙인들로 북새통을 이뤘지만 메르스 사태로 급식이 중단되면서 썰렁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눔터 바로 옆 ‘수원노숙인 다시 서기 종합지원센터’ 정문 앞에 앉아 있던 한 노숙인은 “이제 밥도 안 줘 배고파 죽겠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경기도 수원역 인근의 무료급식소 ‘무한돌봄 정 나눔터’가 ‘메르스 감염을 막기 위해 부득이 문을 닫게 됐습니다’라는 안내문이 유리벽에 붙어 있을 뿐 굳게 닫혀 있다. 수원=김영석 기자 |
이곳이 문을 닫은 것은 2009년 개소 이후 처음이다. 무료급식을 해오던 봉사단체 ‘119광야’ 관계자는 “가능한 한 빨리 다시 급식을 하고 싶지만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노숙인들이 많아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인근의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팔달구 인계동 효원공원 내 무료급식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평소 같으면 배식을 받기 위해 노숙인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지만 메르스 여파로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생명존중을 위한 무료급식’이라는 플래카드와 ‘메르스 예방을 위해 무료급식 잠시 휴식합니다’라는 안내문만이 급식소를 지키고 있었다.
한참 후에 모습을 보인 한 노인은 “급식이 재개되기를 기다리며 매일 이곳을 찾고 있다”며 “홀로 살면서 효원공원을 찾아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주린 배를 채우는 게 낙이었는데 이름도 잘 모르는 병 때문에 그 작은 일상마저 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메르스가 어렵게 끼니를 이어가는 소외계층의 ‘생명줄’까지 위협하고 있다. ‘진원지’인 평택과 화성, 성남 등지의 무료급식소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해결해 온 노숙인 등이 메르스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주린 배를 잡고 메르스가 진정되기만을 고대하고 있다.
평소에 노숙인 등 많은 인파로 북적거리던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효원공원 내 무료급식소가 메르스 여파로 급식을 중단해 썰렁하다. 수원=김영석 기자 |
메르스 ‘진원지’인 평택의 경우 5개 복지관이 모두 문을 닫았다. 이곳에서는 1500여명의 노인들이 이웃의 정을 나누며 식사를 해결했다.
상황이 어렵게 되자 사정이 다소 나은 복지관은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그렇지 못한 곳은 컵라면을 제공하고 있다. 이마저도 일손이 부족, 2∼3일 분을 한꺼번에 제공하거나 제때 전달하지 못해 노인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평택에서 가장 큰 경로식당이 있는 북부노인복지관 관계자는 “노인들의 건강이 취약해 지난 4일부터 휴관 중”이라며 “등록된 노인분만 400명이 넘어 일손 문제로 상하지 않는 햇반과 김치 등을 일주일치씩 한꺼번에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주일에 수·목요일 두 차례 독거노인 등을 모아 식사를 제공하는 ‘사랑의 밥차’도 운행을 중단했다. 자원봉사자 박모(52)씨는 “알고 지내던 노인분들이 밥차가 안 와 하루 한 끼도 먹지 못하고 있다”며 “‘언제 밥차가 다시 오냐’고 묻곤 해 집에서 식사를 제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평상시 경기도 내에서 복지관을 통해 노인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경로식당이 31개 시·군에 145곳, 시민단체 등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가 20여곳에 달한다.
수원=김영석 기자 lovek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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