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초연하는 이반 투르게네프 원작의 ‘아버지와 아들’에서 배우 남명렬(오른쪽)과 이명행이 각각 큰아버지와 조카로 한 무대에 선다. 서상배 선임기자 |
“셰익스피어에서 사실적인 삶, 보통 사람의 삶을 보기는 쉽지 않아요. 러시아 연극에는 셰익스피어에 없는 진짜 인간의 삶이 들어 있죠. 우리가 어떻게 다투나 궁금한 사람은 이 작품을 보며 무릎을 칠 거예요.”
투르게네프는 사회변혁기 러시아의 세대 갈등과 엇갈린 사랑을 세밀하게 그렸다. 1862년 발표되자마자 뜨거운 논쟁이 뒤따랐다. 연극은 이런 사회정치적 현실보다 가족의 용서와 화해,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큰아버지 빠벨은 보수파다. 유럽문화에 호감을 갖고 종종 프랑스어를 쓴다. 젊은 세대의 생각은 이해하지 못한다. 남명렬은 “귀족계급이라 경제적으로 여유 있기에 책을 읽고 예술을 향유하면서 일은 하지 않는 잉여인간”이라고 설명했다.
배우 남명렬(오른쪽)과 이명행(왼쪽) |
연극은 프리엘의 희곡화와 이성열의 연출을 거치면서 세대 갈등보다 사랑에 무게중심이 쏠렸다. 남명렬은 “이 연극에서 사랑은 통속극의 사랑과는 결이 다르다”고 밝혔다.
“‘아버지와 아들’은 사상과 사회를 통해 사랑을 얘기해요. 여러 겹인 데다 미시담론과 거대담론을 포괄해요. 로맨틱 코미디를 보면 ‘아, 재밌네’ 하지만, 이런 연극의 사랑 얘기를 보고 나면 가슴속에 뿌듯함이 있죠. 세상과 타인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거예요. 그게 예술의 힘이죠.”
두 배우는 이 연극에서 처음으로 함께 연기한다. 낭독 공연에서 두 번 만났지만 연기로 호흡을 맞추기는 처음이다. 남명렬이 23년차, 이명행이 10년차인 점을 생각하면 의외다. 남명렬은 33살에 연극을 시작했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6년을 일하다 ‘도저히 못하겠다’고 그만둔 다음이었다. 그간 영상과 무대를 누빈 그는 지적인 배우 이미지로 대중과 친숙하다. 이명행은 불문과를 졸업한 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늦은 나이에 데뷔했다. 5·18을 다룬 연극 ‘푸르른 날에’의 주역으로 5년간 그가 보여준 에너지는 관객의 뇌리에 각인돼 있다. 남명렬은 이명행에 대해 “우리 연극 구성원들이 입모아 하는 얘기가 ‘명행이는 소리가 참 좋아’”라며 “부모님에게 고마워할 일”이라고 말했다.
“명행이는 캐릭터에 자유롭게 접근하는 장점이 있어요. 캐릭터 접근을 몹시 어려워하는 배우들도 있는데, 이 친구는 세상과 연극, 캐릭터에 대해 사고체계가 열려 있구나 싶어요. 저는 그 나이에 그렇게 못했거든요.”
“선생님이 연기하는 빠벨은 밉지 않아요. 보수적 인물인데도 딱딱하고 고지식한 게 아니라 귀족적인 면모가 드러나요. 또 연기할 때 전체를 보세요. 선생님은 전체를 보고 ‘여기에서 이렇게 움직이는 게 좋겠다, 이쪽은 소리를 죽여서 대사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죠. 연기에 여유와 위트가 있어요.”(이명행)
관객이 이 연극에서 무엇을 얻어가면 좋을지를 묻자 남명렬은 “백지상태에서 여러 인물의 삶을 보고 즐겼으면 좋겠다”며 “내 삶을 안으로 들여다보면 비극이나 희극이지만, 제3자로서 우리 삶을 떨어져서 보면 다 웃기지 않는가”라고 답했다. 이명행은 “아르까디가 평범하기에 동시대 사람들에게 이입할 지점을 줄 것 같다”고 말했다.
“아르까디는 극적인 사랑을 꿈꾸지도, 극적인 혁명가가 되지도 못해요. 지금 우리 사회가 그런 것 같아요. 사회가 보수적으로 흐르고 정치적으로 얼토당토 않은 일이 벌어져도 혁명에 뛰어들 처지도 아니잖아요. 아르까디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원은 사랑이에요. 관객들도 취업이 힘들고 살기 어려워도 삶을 이어가게 만드는 사랑을 품고 있지 않을까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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