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중견기업 관리직에서 퇴직한 최모(57)씨는 최근 빌딩 경비원으로 재취업했다. 가족들은 “좀 쉬라”고 권했지만 자녀 2명이 모두 대학에 다니고 있는 최씨는 마음이 바빴다. 그는 “은퇴 후 공백 없이 바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니 가족들도 어느 정도 안도하는 눈치”라고 말했다.
직장을 그만둔 중장년층의 재취업이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근로자의 평균 퇴직 연령은 52.6세였다. 고령화 추세에서 그 나이는 노인 축에도 끼지 못한다. 더욱이 자녀의 취업이나 결혼 연령이 늦어지는 현실이 50대 은퇴자들을 구직 시장으로 내몰고 있다. 노후를 대비하지 못한 대부분의 중장년층은 학력·경력에 무관하게 경비일 등 ‘알바’에 가까운 재취업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가 채용포털 파인드잡과 함께 지난 5월 중장년 구직자 10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퇴직 이후 재취업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3.0%가 퇴직 이전에 ‘재취업 준비를 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또 중장년 구직자 중 37.1%는 퇴직 이후 1년 이상 재취업을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 후 공사 현장에서 경비일을 하고 있는 이모(58)씨는 “요즘에는 예전과 달리 경비 업무도 경쟁률이 높아서 아무나 들어가지 못한다”며 “경비 자리가 나면 10∼20명씩 몰려든다”고 전했다.
중장년층이 재취업 희망직종으로 가장 선호하는 직종은 ‘경영·사무’(34.4%) 관련 업무인 것으로 조사됐다. 대다수 퇴직자들이 ‘경영·사무’ 직종에서 일하다 은퇴하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로 분석된다. 그 뒤를 ‘영업·무역’(14.4%), ‘생산·제조’(13.9%), ‘특수 전문직’(11.9%) 등이 이었다. 이런 희망과 달리 중장년층이 재취업할 수 있는 직종은 단순노무직이 대부분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장년 재취업자 현황에 따르면 2013년 재취업에 성공한 장년층 199만8000명 중 임시·일용직으로 재취업한 비율이 45.6%였다. 재취업자의 월 평균임금은 184만원으로 20년 이상 장기근속한 근로자 평균임금(593만원)의 31%에 불과했다.
노후 준비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보험연구원이 7일 발표한 ‘2015년 보험소비자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성인 남녀 1200명 중 “노후 준비가 잘돼 있다”고 답변한 비율은 9.3%에 불과했다.
필요한 노후소득의 50∼70%를 마련했다는 응답이 39.8%로 가장 많았고 30∼50% 미만(27.3%)이 뒤를 이었다. 노후 준비를 제대로 못한 주요 원인으로는 과도한 자녀 교육비와 결혼 비용 등 자녀 양육비 때문이라는 답변이 41.3%로 가장 많았다.
재취업으로 받는 스트레스도 심각한 수준이다. 전경련 조사 결과 중장년 구직자들의 재취업 스트레스지수는 평균 7.2점(10점 만점)으로 조사됐으며 구직기간이 길어질수록 스트레스지수 역시 함께 올라갔다. 재취업 스트레스의 원인으로는 수입 부족(15.3%), 대출금 등 채무(15.2%), 자녀 교육비(13.6) 등 절반가량이 경제적 문제였다.
오랜 기간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 있다가 갑자기 밖으로 내던져진 데 대한 불안감도 50대의 위기감을 부추긴다. 20여년간 대기업 사무직에 종사하다 퇴사한 김모(55)씨는 2년 동안의 공백기를 거쳐 최근 중소기업 생산직 재취업에 성공했다. 그는 은퇴하고 재취업하기 전까지 “쓸모없는 사람으로 인식될까 두려웠다”면서 “막상 은퇴를 하니 모든 걸 다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존감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중장년층을 ‘새로운 생애주기’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민간연구소 희망제작소는 최근 펴낸 ‘100세시대 새로운 생애주기 제안’ 보고서에서 “고령화시대의 새로운 생애주기에 대한 이해를 전 세대로 확산시켜야 한다”며 “은퇴 전후의 중년 전환기에 탐색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우중 기자 l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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