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역량 키우는 건 ‘N포세대’가 할 일 지하철 출근길에 속눈썹, 파우더에 립스틱 화장까지 하는 여성을 보면 솔직히 눈살이 찌푸려진다. 너무 짧은 팬츠나 속이 훤히 보이는 옷을 입은 젊은 여자를 볼 때도 그렇다. 친구한테 이런 얘기를 했더니 나이 들었다는 징후란다. 요즘 아이들 말로는 ‘꼰대’가 돼간다는 뜻이다. 인터넷에는 ‘꼰대 자가진단법’이라는 것도 나돈다. 여러 버전이 있는데 ‘남 얘기는 잘 안 듣고 말을 많이 한다’ ‘요즘 젊은 것들에 불만이 많다’ ‘반말 투로 말한다’ 등 10여개 항목에 해당하는 게 많을수록 꼰대 중증이라는 식이다.
요즘 세대 격차를 드러내는 가장 핫한 표현이 ‘헬(지옥)조선’이다. 국민 절반 이상을 난민으로 만든 시리아도 아니고 최소한의 인권·자유를 주장할 수 없는 북한도 아닌데 한국이 무슨 헬이냐. 과거 고난의 역사를 열거하며 정색하는 어른들이 많다. 내게는 감수성이 예민한 세대의 과장된 투정쯤으로 비쳤다. 그런데 최근 본지 수습기자 지망생들의 작문 시험을 채점하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취준생(취업준비생) 신분인 이들의 분노는 예상외로 크고 구체적이었다. 불러주는 곳 없는 인문계 졸업생들의 분투기, 고시원·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는 ‘흙수저’의 서러움, 노력만으로 정규직과 내 집, 노후를 꿈꿀 수 없다는 불안….
황정미 논설워원 |
‘N포세대’ 미래가 바뀌려면 정치권이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제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30여 차례나 청년, 젊은이를 언급했다. “우리 청년들의 미래를 위한 마음에는 여와 야, 국회와 정부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 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대졸 이상 남성 청년층 체감실업률이 30%에 육박한다니 정권은 물론 정치권이 위기로 받아들일 만하다. 하지만 공명은 느껴지지 않는다.
젊은 세대를 대변하기에 정치권은 노쇠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64세,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62세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 평균 연령은 65세로 역대 최고령이다. 새정치연합 최고위원회 평균 연령은 57세지만, 박지원·정대철 등 70대 정치인의 입김이 여전하다. 이들 정치인이 현역으로 뛰는 현실이야말로 ‘고령화 사회’를 실감케 한다. 나이가 들수록 보수화되기 마련이다. 한때 새 정치의 상징이었던 386그룹도 486, 586이 되면서 기득권 세력으로 손가락질 받는다. ‘N포세대’의 분노, 불안을 제도권 내로 수렴하려면 ‘고령 정치’의 틀을 깨야 한다. 새정치연합 혁신위는 내년 총선 공천에서 만 42세 이하 청년에게 국회의원 10% 이상을 할당하자고 했다. 19대 청년비례대표의원들의 성과는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지만 청년층이 진입할 ‘기회의 창’은 열어놓는 게 마땅하다. 새누리당도 구색 갖추기 식이 아닌 청년층 배려가 필요하다.
청년 세대도 ‘꼰대 정치’ 탓만 하지 말고 정치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 미국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70대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99%의 세상’을 구호로 힐러리 클린턴 대세론을 뒤흔들었던 건 젊은이들의 호응 덕분이었다. 한 수험생은 “어른들은 우리를 시혜, 구제 대상으로 볼 뿐”이라고 적었는데 ‘타자’가 아닌 ‘주체’로 만드는 건 그들 세대의 몫이다. SNS에 불만, 혐오를 배설하는 데 그친다면 표 계산에 빠른 정치권의 관심은 고령층 유권자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황정미 논설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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