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과거를 알아야 변화에 대응 역사에 대한 시각차 때문에 우리 사회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역사는 어떠한 사물이나 사실이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 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사실에 기초해 객관성을 유지할 때 의미를 갖는다. 자연사는 인류 탄생 이전을 중심으로 동물, 식물, 광물의 종류와 분포, 생태, 변화 등 자연계의 역사를 말한다.
자연사박물관은 자연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고 궁금증을 풀어주는 공간으로 과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바른 시각을 배우는 곳이다. 외국학자들이 한반도의 자연사를 알고 싶다면서 자연사박물관을 찾을 때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대한민국만이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다는 사실이 한없이 부끄럽다. 선진국들은 19세기부터 국립자연사박물관을 건립해 교육과 탐구에 활용하고 있으니 우리가 과학분야에서 노벨상을 논할 수준인지 되묻게 된다.
공우석 경희대 교수·지리학 |
우리가 당면한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문제를 이해하고 미래에 대응하려면 과거를 알려주는 다양한 대용자료를 바탕으로 자연생태사를 알아야 한다. 육지에서는 퇴적층의 꽃가루, 포자 등 미세화석과 잎, 열매, 줄기, 나이테 등 식물 거대화석과 뼈, 이빨, 곤충 사체 등 동물 거대화석 등을 활용해 과거를 복원한다. 바다에서는 규조, 유공충, 산호, 패류, 어류 등에 기초해 해양생태계를 복원한다. 화석 가운데 분포범위가 좁고 특이한 생태적 특성을 가진 생물은 과거 환경변화를 알려주는 좋은 지표이다.
식물이 생산한 꽃가루는 바람이나 빗물에 옮겨져 호수나 강바닥에 쌓이며, 공기와 만나 썩지 않으면 퇴적층에 보존된다. 토양에서 분리한 꽃가루를 현미경을 이용해 종류와 숫자를 헤아리고 시기별로 출현한 식물의 종류와 양을 분석해 자연식생사를 복원한다. 화분 분석 결과는 환경 변화에 따라 이동한 종, 사라진 종, 적응한 종 등 생물의 역사를 알려준다. 아울러 인류의 활동에 따라 감소, 멸종, 등장한 생물종을 바탕으로 인간의 자연간섭사를 알 수 있다.
나무의 나이테도 과거 기후와 생태 변화를 알려주는 타임머신이다. 나무의 세포는 봄부터 여름까지 물을 충분히 흡수하므로 부피가 커지나 세포를 늘리느라 두껍고 튼튼한 세포벽을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늦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면 물의 공급이 적어지면서 세포가 전보다 늘지 않는 대신 세포벽이 두꺼워지면서 나이테가 생겨난다. 과학자들은 나이테의 굵기, 촘촘한 정도를 비교해 기후와 환경변화를 알아낸다.
역사시대에 기록된 고문헌에는 시대별 생태와 기후 상황을 묘사하는 기록이 있고, 간접적으로 당시 환경을 추정할 수 있는 기록도 있다. 이러한 문헌자료를 이용하면 연대별로 상세한 생태와 고기후의 변화도 복원이 가능하다. 주변에 살아 있는 동물과 식물도 자연생태계를 복원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설악산과 한라산 정상에 분포하는 빙하기 유존종은 북방의 식물이 어떻게 이 땅에 정착했는지 자연사를 밝히는 열쇠가 된다.
대용자료를 이용해 고환경을 복원하면 기후변화가 자연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 수 있다. 과거 기후변화에 따라 자연생태계에 어떠한 변화가 나타났는지를 알면 기후 시스템과 생태계 사이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고, 미래에 기후변화에 따라 자연생태계에 어떠한 일이 발생할지를 예측할 수 있다. 자연생태계의 과거를 올바르게 보는 눈이 없다면 미래에 어떤 일이 나타날지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공우석 경희대 교수·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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