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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뛰어 月20만원"···'백화점 택배노인'의 애환

입력 : 2015-12-18 09:27:04 수정 : 2015-12-18 10: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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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안개가 짙어 체감온도가 낮았던 지난 9일 정오, 서울 지하철 2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내는 바깥바람의 찬 기운이 가시지 않아 쌀쌀했다. 찬 공기 속에서 얇은 패딩을 입은 전모(70)씨가 간이 의자에 앉아 떡을 베어 물었다.

떡을 삼키는 전씨의 발치에는 '출발지'와 '도착지'가 붙은 쇼핑백들이 놓여 있었다. 쇼핑백의 목적지는 모두 서울 시내 백화점이다.

전씨는 일명 '백화점 택배노인'이다. 서울 시내 백화점에서 백화점으로, 지점마다 물량이 달리면 지하철을 이용해 필요한 재고를 들고 달려간다. 그렇게 배달되는 쇼핑백 하나당 떨어지는 수당은 1400원이다.

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손가락 세 개를 잃은 전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백화점 택배노인'이 되기를 선택한 전씨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꼬박 12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물건을 나른다.

다행히 65세 이상 노인은 서울 시내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배달에 들어가는 교통비를 아낄 수 있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를 두고 적자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천원이 아쉬운 전씨 같은 이들에게 운임 면제는 천금 같은 혜택이다.

그러나 막상 손에 쥐어지는 돈은 많지 않다. 주 6일을 쉬지 않고 일하지만 지난달 벌이는 고작 20만원이었다. 노령연금을 합치면 한 달에 40만원.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올해 1인가구 최저생계비는 61만7281원이었다.

아낄 구석이 식비뿐이라 매끼니 점심을 세 덩이에 2000원짜리 떡으로 해결한다는 전씨는 "한 달에 50만원만 벌 수 있으면 걱정이 없겠다"고 중얼거렸다.

서울 명동의 한 백화점 인근에서 만난 김모(72)씨도 전씨와 같은 백화점 택배노인이다. 다만 김씨의 처우는 전씨보다는 낫다. 김씨는 특정 의류업체의 제품만 전담해 배달하고, 한 건당 5000원을 받는다.

운이 좋아 물건이 무겁거나 많은 물건을 한 번에 배달할 경우 1만원씩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운이 좋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전씨와 마찬가지로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일하는 김씨의 한 달 평균 소득은 40~50만원이다. 노령연금 20만원을 합쳐야 간신히 최저생계비를 넘길 수 있다.

고지혈증을 앓고 있어 약값으로만 매달 5만원을 쓰는 김씨는 저축은 꿈도 꾸지 못한다. 난방비와 식비까지 빠져나가면 한 달 생활을 유지하는 게 최선이다. 김씨는 "일하고 먹고 자는 게 전부"라며 자신의 생활을 "정상이 아닌 생활"이라고 표현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정부가 노인 일자리 창출을 입버릇처럼 되뇌고 있지만 전씨와 김씨처럼 현실 노인들의 일자리는 열악하다.

백화점 택배노인은 그나마 일부 언론에서 노인들의 활기찬 일터로 묘사되지만, 정작 이에 종사하는 노인들은 생활을 유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당에 자신의 고용형태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있다. 그저 매달 입금되는 돈을 받아 생활을 꾸려나갈 뿐이다.

통계청이 조사한 연령별 취업분포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65~79세 노인 취업자는 201만2000명에 달하지만, 이중 36.0%에 달하는 72만6000명이 단순노무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직업소개업체에 등록한 후 사실상 일용직으로 불규칙하게 일을 하는 등 통계상 취업자에 포함되지 않는 이들을 감안하면 고용의 질은 더욱 떨어지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백화점 택배노인 자리 정도면 '못해서 난리'라는 게 이 직업에 종사하는 노인들 사이의 평가다.

통계청이 지난 9월 발표한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고령층(55~79세) 중 장래에 일하기를 원하는 비율은 61.0%였다. 근로 희망 사유로는 현실적인 이유인 생활비가 57.0%(4121명)로 가장 많았다.

일자리를 원하는 노인들이 많고, 그중 대부분이 여가나 취미가 아니라 실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함인데도 정작 노인을 위한 질 좋은 일자리는 찾기 어려운 것이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는 노인 일자리를 용돈 개념으로 생각한다"며 "노인에게 50만원 정도로 왜 못 사느냐는 사람은 생활비가 아니라 용돈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백화점 택배노인처럼) 노인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을 두고 좋다고만 해석할 순 없다"며 "이들은 소득보장이 되지 않으니 무조건 일하며 돈을 버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백화점 택배노인처럼 노인들은 젊은 사람들이 하지 않는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인 주변부 일을 주로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실제 소득으로 평가한다면) 백화점 택배와 같은 일자리는 생계형 일자리가 아니라 소득 보충형 일자리"라며 "소득 보충형이 아닌 생계형 일자리로 자리매김할 대책을 우리 사회가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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