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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의미술살롱] 박수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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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3-11 22:19:01 수정 : 2016-03-11 22:2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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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던 시절 겪은 세대엔
그의 그림은 추억의 한 페이지
회화적으로 주목할 건 평면성
단순한 선·색으로 동적 요소 구현
젊은 작가들에 새 상상력 될 것
국민화가로 칭송되는 박수근 화백의 그림엔 어떤 특별한 것이 있을까. 사람들은 그의 삶을 먼저 얘기한다. 생전에 생계를 위해 쌀 한 되 값에도 그림을 팔아야 했지만 사후엔 한국 작가 중에 가장 그림 값이 비싼 화가가 됐다는 스토리는 단골 메뉴다. 이 밖에 고향 산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강암 같은 화면 위에 단순한 선과 구도로 보통사람들의 진솔한 삶을 담아냈다는 점도 부각된다.

전쟁과 가난은 당시 우리 모두의 굴레이자 시대상이었다. 미군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며 생계를 꾸리기도 했던 박 화백에게 그림은 어쩌면 생존 그 자체였을 것이다. 박수근 그림은 어렵던 시절의 얘기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 중심엔 늘 가장 강한 이름 어머니가 자리한다. 행상에 나선 어머니는 새끼를 등에 업고 머리 위엔 팔 물건을 잔뜩 이어야 했다. 어머니들에게 삶의 무게가 그만큼 버거웠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어렵던 시절을 건넌 세대들에게 박수근 그림은 정겨운 추억의 한 장면이다. 사람이 살만 해지면 지난 세월을 챙기게 마련이다. 박수근 그림이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요즘도 중견작가들이 그린 1970년대 삶이 담긴 풍경들에 중·장년층 수요가 있는 이치와 같다. 삶이 팍팍해지면 지난 세월에서 위안을 받기도 한다. 세대를 초월해 열광적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박수근 그림의 미덕을 추억의 갈피와 위안적 요소에서 찾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박수근 화백을 회고하는 이들에게서 많이 듣는 얘기가 하나 있다. 그림이 팔리면 주변 친구들에게 술값으로 상당액을 떼어주고, 귀갓길엔 여러 노점을 일부러 들러 과일 등을 샀다는 스토리다. 가난한 이들에게 과일 한 알이라도 팔아주고 싶은 심정에서다. 노점을 하는 이들도 그의 이런 마음을 알기에 소량을 사도 큰 손님으로 대했다. 박수근 화백의 맑은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림과의 진한 교감은 투명한 작가정신에서 오게 마련이다. 관람자의 마음을 투영해서 보게 해주는 거울 같은 존재다.

무엇보다도 박수근 그림에서 회화적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평면성이다. 지극히 단순한 선은 정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동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박수근의 미학이다. 그동안 전문가들이 주목하지 않은 부분이다. 작품 속 인물들의 검정 고무신의 모습에선 율동이 느껴진다. 실제로 ‘농악’ 작품의 농악대 발들의 모습에서 흥겨운 가락이 배어나온다. 단순한 선과 색으로 구성한 평면을 가지고 입체적인 동적 요소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평면성은 전통 한복의 디자인 과정에도 스며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할아버지 한복을 짓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방바닥에 옷감을 펼쳐놓고 마름질을 다 하셨다. 시침질 과정도, 마네킹 옷본 작업도 안 했는데 만들어진 옷은 잘 맞았고 할아버지는 만족하셨다. 한복은 이처럼 평면 디자인으로 완성되는 옷이다.

한복은 마른 사람이 입어도, 살찐 사람이 입어도 모두를 돋보이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평면성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포용성 있는 공간 흡수력과 한복 특유의 선이 율동감을 준다. 박수근의 평면 미학을 한복 속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입체적인 작업을 통해서만 가능한 서양 옷과는 다르다. 박수근의 그림이 평면적이지만 입체적이고 동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서양미술과 한국미술 특질의 단면을 유추하게 한다.

박수근 그림의 발 모양새는 조선 시대 화가 신윤복의 그림에서도 엿볼 수 있다. 유명한 대표작품 ‘미인도’에서 치맛자락 아래로 살포시 드러난 여인의 발은 매우 동적이다. 지극히 평면적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그림 전체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다.

박수근은 아마도 이런 한국적 전통을 알게 모르게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사실상 그림을 독학으로 터득한 사람이다. 이것이 오히려 서구적 미술교육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배경이다.

박수근 그림을 비롯한 전통 미술의 평면성에 대한 깨달음은 한국미술의 새로운 에너지가 될 것이다. 젊은 작가들에겐 창작의 새로운 상상력이 되어 줄 것이다. 기교를 넘어선 어눌함과 천진성의 세계이기도 하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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