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과 함께 구상하는
영국 디자이너 헤더윅의 파격
구글 우주선 신사옥처럼
창조하고 싶다면 소통해야 한 원로작가는 새내기 작가들에게 늘 당부하는 말이 하나 있다. 한번쯤 스스로 전시기획과 홍보를 해보라는 것이다. 사람을 모으고 설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몸으로 체험해야 작가의 길을 가늠할 수 있다는 뜻에서다. 스스로를 마케팅하는 능력이 없으면 작가로서 생존이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영국의 ‘헤더윅 스튜디오’ 전의 주인공은 모범 사례다. ‘헤더윅 스튜디오’를 이끌고 있는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46)의 학창시절 편지와 명함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헤더윅은 영국 디자인계의 거장인 테런스 콘란 경이 ‘우리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극찬한 인물이기도 하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
최대의 난제는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었다. 그는 ‘레이 피니스 자선신탁’에 후원을 요청하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소요되는 자재들을 자세히 적어 동봉했다. 자선신탁은 그의 편지의 절실함에 기꺼이 자금을 지원해줬다. 굳이 전시장에서 지나간 편지를 내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자신들은 어떤 아이디어든 반드시 현실화할 수 있다는 모토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관람객들에게 신뢰감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오브제가 된 셈이다. 작가정신을 이 편지 한 장으로 아우르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헤더윅은 대학원 졸업 때도 일을 벌였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고민 끝에 막대명함을 만들었다. 사람들의 기억을 기발한 명함으로 붙잡아 보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아이스크림 막대를 활용한 비즈니스 명함을 직접 만든 틀로 찍어 냈다. 사람들은 막대명함을 받아 들고 그의 특별함을 각인했다.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창성과 혁신성을 추구하는 그의 모습은 이미 학창시절에서부터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건축, 설계, 조형물, 디자인 등의 분야를 넘나드는 융합적 사고는 어떤 아이디어도 나쁜 것이 없다는 그의 디자인 철학의 결집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쓰고 남은 치약 튜브의 쭈글쭈글한 질감을 건축 외관에 입히기 위해 수공으로 직접 기계를 만드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어떤 곳에서도 만들어주지 않았지만 아이디어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존의 공식과 여건에 따라 디자인 양식을 답습하는 관행을 철저히 타파하고자 스스로 스튜디오까지 설립했다. 스튜디오도 풍경도 어떤 음식도 만들어 낼 수 있는 부엌을 닮아 있다.
그는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에 대한 고정관념도 부수고 있다. 그가 설계한 런던 템스강을 가로지르는 보행자 전용도로는 공원처럼 디자인됐다. 이름도 그래서 ‘가든 브리지’다. 울창한 숲으로 구성해 도시의 새로운 풍경이 될 것 같다. 이 프로젝트는 영국 배우이자 사회 활동가 조애나 럼리가 처음으로 제안해서 시작됐다. 현재 자금 마련을 위해 비영리 재단을 설립해 기금을 모으고 있다. 상당액이 모여 머지않아 착공될 예정이다. 시민들을 디자인 프로젝트에 적극 동참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시민을 능동적 환경창조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SF영화 속 우주선 같아 화제가 된 구글의 신사옥 디자인도 그의 손길을 거쳤다.
헤더윅은 어떻게 하면 더 창의적일 수 있냐는 문제는 그의 화두가 아니라고 했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그저 정해진 틀이나 규칙을 만들려고 하진 않는 노력에서 온다는 것이다. 정돈되어 있지 않던 아주 복잡한 것들을 ‘자 이제 충분해’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끊임없이 다듬어 나가는 과정이라 하겠다.
그는 “난 혼자 욕실 탕 안에서 대단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스타일이 아니다”라며 “스튜디오 사람들과 논의와 논쟁을 거듭하면서 즐겁게 아이디어를 가꿔나간다”고 말했다. 모두를 들뜨게 할 수 있는 것이 최고의 마케팅 프로젝트를 탄생시킨다는 의미다.
창조적이고 싶다면 주변 환경, 사람들과 먼저 소통을 하라. 소통에서 창조도 마케팅도 싹트게 마련이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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