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계절 동네 도서관 찾아보세요
조선시대에는 관리들에게 휴가를 주고 마음껏 책을 읽게 하는 제도가 있었다. 사가독서(賜暇讀書)제도가 그것이다. ‘사’는 하사할 사, ‘가’는 휴가 가이니 왕이 하사하는 휴가기간에 마음껏 독서를 하라는 뜻이다. 사가독서는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집현전은 세종의 지대한 관심 속에 국가의 중요 정책을 연구하게 했던 기관이었다. 세종은 수시로 이곳을 방문해 학자들을 격려했으며, 최고의 특산물이었던 귤을 하사하는 등 최고의 대우를 해주었다.
그러나 집현전의 학자들에게도 불만은 있었다. 연구기관 특성상 장기 근무를 하면서 승진이 늦어지는 것이었다. 실제 정창손 22년, 최만리 18년, 박팽년 15년, 신숙주 10년 등 장기 근무하는 학자가 많았다. 이러한 상황을 파악한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을 위해 유급휴가제도인 사가독서제를 실시했다. 심신이 지친 학자들에게 독서를 하며 재충전을 하라는 뜻이었다.
사가독서는 1426년(세종 8) 12월 권채, 신석견, 남수문 등을 집에 보내 3개월간 독서를 하면서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에서 비롯됐다. 처음에는 집으로 보냈다가, 이후에는 북한산의 진관사(津寬寺)를 사가독서를 하는 장소로 활용했다. 1456년 세조 때 집현전이라는 기관은 없어졌지만 사가독서의 전통은 그대로 이어졌다.
성종대에 이르면 아예 현재의 용산 지역에 독서당을 만들어 사가독서제를 정착시켰다. 1492년(성종 23) 성종은 용산 한강변에 있던 폐사(廢寺)를 수리해 독서당을 만들었는데, 남쪽에 있는 독서당이라 하여 남호독서당(南湖讀書堂)이라 했다. 독서당의 다른 명칭이 ‘호당(湖堂)’이었기 때문이다. 중종 때인 1517년(중종 12)에는 두모포의 정자를 고쳐 지어 동호독서당(東湖讀書堂)이라 했다.
동호독서당은 현재의 옥수동과 금호동의 산자락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소각될 때까지 75년 동안 연수원과 도서관의 기능을 수행했다.
한강의 다리 중 ‘동호대교’라는 명칭은 동호독서당에서 유래한 것이며, 율곡 이이의 저술 ‘동호문답’은 독서당 시절에 쓴 책이다. 신숙주·이황·이산해·이이·정철·유성룡 등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 대부분이 독서당을 거쳐 갔다. 당시 함께 수학한 학자들은 계(契) 모임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들이 1부씩 나누어 가진 ‘독서당계회도(讀書堂契會圖)’에는 참여자들의 명단과 함께 독서당에서 압구정 쪽으로 뱃놀이하는 장면이 그림으로 남아 있다.
조선시대 관리들에게 심신의 휴양을 위한 휴가지의 기능과 함께 학문과 독서에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이었던 독서당, 지금은 도서관이 그 기능을 일부 수행하고 있다. 특히 많은 도서관들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인문학 특강과 현장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가을에 도서관을 찾아 사가독서의 기분을 느끼며 독서의 열기 속으로 빠져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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