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서울의 한 사립대 졸업을 미루고 신림동 고시촌에서 외무고시에 매달리고 있는 신연경(24·여·가명)씨는 학원비와 생활비조로 매달 집에서 100만원 이상을 받고 있다. 신씨는 “부모님 사정도 뻔한데 돈을 부쳐달라고 할 때마다 너무 죄송스럽다”며 “가끔은 우리 집이 고급 오피스텔에서 유명 강사에게 과외를 받고 전담 트레이너에게 건강관리까지 받는 ‘황제 고시생’까진 아니더라도 딸에게 학비 정도는 부담 없이 건넬 형편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1일 취업 포털 잡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4월 취업준비생 845명 중 78%는 “스펙을 한 줄이라도 더 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이 준비 중인 스펙(복수응답)은 주로 희망 직무 관련 자격증(41.0%), 전공 관련 자격증(36.4%), 아르바이트 경력(31.1%), 공인 영어점수(28.1%) 등이었다. 잡코리아의 지난해 스펙 관련 조사에서도 취준생 90.1%는 “현재 스펙으로는 부족하다”고 답했고, 40.9%는 스펙이 부족해 입사 시험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 같은 스펙 대부분이 부모의 재력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부여된다는 점이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부모를 둔 취업준비생일수록 어학점수나 인턴십, 성형수술 등 덕분에 채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서울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이준호(31·가명)씨는 요즘 스펙도 ‘빈익빈 부익부’라는 말을 절감하고 있다. 졸업 유예기간을 포함해 5년 가까이 채용문을 두드렸다가 최근에서야 중소기업에 들어간 이씨는 “전공 공부와 취업 준비, 생활비 마련까지 병행하다 보니 입사가 늦어졌다”며 “학원에 다니지 못해 다른 사람이라면 1년이면 충분했을 스펙 쌓기가 3년이나 걸렸다”고 아쉬워했다.
그래도 때론 능력이 재력을 능가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직업능력평가원이 500대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에게 신입사원 선발 시 중시하는 항목을 물었더니 △최종학교 졸업시점(100점 만점 중 19.6점) △졸업평점(16.2점) △전공(14.7점) △출신학교(14.5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학능력과 전공·직무 관련 자격증, 해외취업·어학연수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10.3점, 9.5점, 6.0점에 불과했다. 채창균 직능원 선임연구위원은 “졸업 후 3년 이내, 3.0 이상의 졸업평점, 서울 소재 대학·지방 국립대라는 스펙은 갖춰야 서류전형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흙수저’들은 대학과 관련된 4개 항목(스펙)에서도 낮은 점수를 받을 공산이 크다. 초중등 교육 단계에서 사교육 영향력이 상당한 만큼 ‘금수저’ 학생들이 더 나은 학벌을 가질 확률이 높다. 졸업 유예자들 중에도 학비·생활비를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 등으로 전공 공부나 국가고시, 취업 준비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흙수저들이 많은 것은 불가피하다. 용케 좋은 직장은 얻었다고 하더라도 흙수저들을 우대하는 직장은 없어 보직이나 승진 등에서 금수저들에게 밀리는 경우도 많다. 외시생 신씨는 “용케 연수를 받는다 하더라도 모든 수업이 영어라는데 제대로 버틸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는 대학생들의 진로교육 및 취업·창업 지원을 강화해야 하고, 기업은 맞춤형 인재를 선발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개인·부모의 능력에 좌우되는 게 스펙”이라며 “정부와 대학은 학생들이 취업에 필요한 교내 프로그램을 대폭 늘려야 하고 기업도 사회 통념상 스펙이 좋은 사람을 뽑기보다는 회사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인재를 뽑겠다는 마인드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민섭·김주영·이창수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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