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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레나강을 가다] 쇠락의 길 걷던 석탄도시, 신동방정책 플랫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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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04 15:00:00 수정 : 2017-11-04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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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경학적 요충지’ 네륜그리 / 매장량 풍부… 60년대 본격 탄전 개발 / 석탄단지에 각종 시설 들어서 ‘부흥기’ / 1990년대 소련 해체 이후 활력 잃어 / 2016년 말 선도개발구역으로 선정 / 교통·물류망 집중적인 정비로 활기 / 동북아로 천연자원 수출 선도할 듯 / 극동 항만·중국 국경과 가까워 이점 / 철도망 이용해도 북극항로 접근 쉬워 / 文정부 신북방정책 전진기지 삼아야 알단(Aldan)을 떠나 다시 연방도로 A360 ‘레나’를 따라 남쪽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아무르주의 네베르(Never)에서 야쿠츠크(Yakutsk)까지 장장 1157㎞에 달하는 이 도로는 사하 공화국(야쿠티야)의 중·남부 중심지들을 연결하는 유일한 간선(幹線)이다. 2022년 완공을 앞두고 아직 많은 구간이 비포장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에, 시속 60㎞ 이상으로 달리기가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알단에서 6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비로소 야쿠티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남야쿠티야의 산업중심지인 네륜그리(Neryungri)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네륜그리 석탄 산지를 배경으로 한 탐사단. 네륜그리는 1970~80년대 극동·시베리아 산업화의 중심지 중 하나로 성장했다가 점점 활력을 잃었지만 최근 푸틴의 신동방정책으로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전기를 맞고 있다.
◆극동·시베리아 산업화의 중심지

고지 아래로 네륜그리가 가까이 보일 때는 이미 날이 저문 후였다. 어둠 속에서 군데군데 보이는 희미한 불빛들은 네륜그리를 마치 소련 시절 산업화를 위해 열정을 불사르고 이제는 쇠락한 도시처럼 보이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네륜그리의 인구는 1970년대부터 급속하게 성장하여 1998년 7만5600명까지 늘었으나, 이후 감소세를 보이면서 현재는 5만7200명 정도에 불과하다.

이 지역은 17세기 중반 야쿠츠크에서 강을 따라 극동으로 향했던 러시아인 탐험가들에 의해 처음으로 외부에 알려졌다. 19세기 초부터 학술탐사가 이루어졌지만, 산업 개발이 시작된 것은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였다. 당시 이 지역에는 소수민족인 에벤키(Evenki)가 거주하고 있었는데 ‘네륜그리’라는 지명은 에벤키어로 연어의 일종인 ‘그레일링(grayling)의 강(江)’이라는 의미이다.

1952~62년 남야쿠티야 종합탐사 과정에서 네륜그리의 지질조사와 석탄매장량 평가가 이루어졌고, 1963년부터 가동된 출만(Chulman) 지역발전소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네륜그리 탄전 개발이 시작되었다. 1974년 10월 남야쿠티야 석탄단지 건설을 위해 ‘야쿠트우글레스트로이’ 콤비나트가 설립되었고, 1974년 12월 31일 네륜그리 탄전이 시설공사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이어서 1978년 10월부터는 네륜그리 탄전에서 채굴된 석탄이 바이칼∼아무르 철도(BAM)를 통해 러시아의 다른 지역으로 운송되기 시작했다. 1975년 6월 ‘야쿠트우글레스트로이’ 콤비나트는 기존 마을에서 7㎞ 떨어진 곳에 신도시 건설을 시작했고, 11월 마침내 네륜그리가 도시로 승격되었다.

이후 1970~80년대 네륜그리는 남야쿠티야 석탄단지 조성 과정에서 탄전, 코크스 및 기타 광물 정광 플랜트, 운송기업, 광업 및 도로장비 수리공장, 지역발전소 등을 갖추면서 극동·시베리아 산업화의 중심지 중 하나로 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1991년 12월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 경제가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네륜그리도 점점 활력을 잃게 되었다. 우리를 여기로 데려다준 운전기사 이고르는 “게다가 2000년대 들어서는 석탄 채굴 및 가공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일자리가 더 줄었다”고 푸념했다.

◆남야쿠티야 선도개발구역
네륜그리 탄전.
네륜그리 시청앞 광장의 레닌 동상.

하지만 최근 네륜그리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전기(轉機)를 맞았다. 러시아 정부는 2015년부터 극동·시베리아 개발을 위해 일종의 산업특구인 ‘선도사회경제개발구역(약칭 선도개발구역)’을 곳곳에 조성하고 있는데, 2016년 12월 네륜그리가 중심지가 되는 ‘남야쿠티야 선도개발구역’ 조성이 확정된 것이다. 러시아 정부는 ‘남야쿠티야 선도개발구역’ 조성을 통해 극동에서 천연자원 심층가공을 위한 대규모 산업중심지를 조성하고 야쿠티야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촉진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는 극동·시베리아 내륙에서 천연자원을 심층가공하여 부가가치를 높인 뒤 잘 정비된 교통·물류 인프라를 통해 동북아, 아·태지역 국가들로 수출한다는 푸틴 정부의 ‘신동방정책’에 근거하고 있다.

러시아 극동개발부에 따르면 ‘남야쿠티야 선도개발구역’의 투자 프로젝트 수행으로 2900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 2025년까지 214억루블(4260억원) 이상의 세수 증가가 예상된다.

◆내륙의 새로운 교통·물류 요지

러시아 정부는 현재 네륜그리를 지나는 교통·물류망을 집중적으로 정비하고 있다. 먼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22년까지 연방도로 A360 ‘레나’의 보수를 완료할 예정이다. ‘레나’의 보수가 완료되면 야쿠츠크에서 중국 접경지역까지 도로망의 연계성이 강화될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레나강 대교가 완공되어야 한다. 레나강 대교는 당초 2014년에 착공하여 2020년에 완공될 예정이었지만,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으로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연결하는 케르치해협 대교(Kerch Strait Bridge)에 우선순위가 밀렸다.

다음으로 아무르∼야쿠티야 철도를 연장하고 있다. 아무르∼야쿠티야 철도는 남쪽으로 틴다(Tynda)에서 BAM, 스코보로디노(Skovorodino)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연결된다. 현재 스코보로디노에서 니즈니베스탸흐(Nizhny Bestyakh)까지는 완공된 상태인데, 여기서 레나강을 건너 야쿠츠크까지 연결할 철교가 아직 건설되지 않고 있다. ‘레나’와 마찬가지로 아무르∼야쿠티야 철도도 레나강을 건너는 교량 건설을 기다리고 있다. 아무르∼야쿠티야 철도는 이후 야쿠츠크를 거쳐 마가단(Magadan)까지 연장될 예정이다.

따라서 러시아 정부의 교통·물류망 정비가 완료되면 남야쿠티야의 산업중심지 네륜그리는 시베리아·극동을 종단하는 연방도로를 자유롭게 이용할 뿐 아니라, 아무르∼야쿠티야 철도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마가단까지 극동의 여러 항만으로 더욱 다양하게 연결될 수 있다. 우리가 네륜그리 군청을 방문했을 때 군수 빅토르 스타닐롭스키는 “네륜그리는 극동의 항만에서 가장 가까운 석탄 산지이며, 동시에 중국 국경과도 가까운 위치에 있다”며 도시의 지리적 강점을 역설하기도 했다.

제성훈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신북방정책의 전진기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동방경제포럼 연설에서 “신북방정책과 푸틴 대통령의 신동방정책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극동으로, 러시아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 국가들의 협력과 공동번영을 이끌 수 있는 희망의 땅”이라고 언급하면서 “러시아와 한국 사이에 9개의 다리(가스, 철도, 항만, 전력, 북극항로, 조선, 일자리, 농업, 수산)를 놓아 동시다발적인 협력을 이뤄나가자”고 제안한 바 있다.

푸틴 정부의 신동방정책과 관련하여 그동안 한국은 극동 연안지역에만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러시아는 동북아 국가들과의 협력 무대를 내륙과 북극권으로 확대하고 싶어 한다. 남야쿠티야 선도개발구역 지정, 연방도로 ‘레나’의 보수와 아무르∼야쿠티야 철도 연장은 이러한 러시아 정부의 의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비록 네륜그리는 철도망을 이용하더라도 극동 연안에서 멀게 느껴지지만, 북극해로 흘러가는 레나강 수운 개발을 포함하여 장차 북극권까지 교통·물류망이 확대될 것을 고려하면 보다 빠르게 북극항로에 접근할 수 있는 전진기지가 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신북방정책의 백년대계를 준비하는 우리가 네륜그리에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제성훈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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