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생 주환(16·가명)이는 온라인 게임을 할 때면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다른 사람이 된 것같이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거친 표현이나 말투를 내뱉는다. 팀을 만들어 게임을 할 때는 다른 참여자와 서로 욕설을 내뱉고 장애인, 성소수자 등를 비하하는 표현도 거리낌 없이 쓰곤 한다. 주환이는 “게임할 때는 나도 모르는 또 다른 자아가 나오는 것 같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크게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24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보고서 ‘청소년 사이버일탈 유형별 대책 연구’(2017)에 따르면 10대 청소년의 사이버일탈이 심각해질 뿐 아니라 저연령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원이 청소년 정책연구기관 종사자, 교사, 경찰 등 관련 전문가 60명을 상대로 청소년 사이버 일탈의 경향성을 조사한 결과 34.5%가 ‘10년 전에 비해 사이버 일탈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고 답변했다. 저연령화 현상에 대해서는 44.7%가 ‘매우 그렇다’는 의견을 보였다. 사이버일탈에는 초등학생도 예외가 아니어서 모바일메신저로 음란물을 공유하거나 BJ(인터넷 개인방송 진행자)들이 유행시킨 ‘앙 기모띠’(일본어 기모치의 변형, ‘좋다’는 의미) 등 포르노 용어를 교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16년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학생 2명이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동급생과 교사의 음란물 합성 사진을 만든 사실이 발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관련 정책이나 대책은 ‘수박 겉핥기’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의 한 고등학생은 “미성년자들의 인터넷 사용을 제한하는 장치가 많지만 부모님 명의를 사용하면 된다”며 “‘셧다운제’처럼 청소년의 인터넷 활용을 무조건 막으려 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사용방법을 알려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을 ‘잠재적 문제아’로 간주하는 시선에서 벗어나 현실을 반영한 눈높이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에 참여한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지금까지는 강력한 처벌, 재미없는 인터넷 윤리교육이 진행되면서 청소년들은 제재를 피하는 법이나 말초적 재미를 추구하는 법 등을 스스로 배우게 됐다”며 “이제라도 청소년 관점에서 현실적이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관련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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