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검절약이나 노력처럼 긍정적인 자세를 강조할 때만 이 말이 통하는 건 아니다. 도로가 만들어내는 티끌 같은 먼지도 금세 태산만해진다. 그런데 잠깐. 도로가 먼지를 ‘만든다’고?
도로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물질이라고 하면 대부분 자동차 매연을 떠올리지만 도로 자체에서도 먼지가 나온다. 타이어에서도, 브레이크 패드에서도, 그리고 아스팔트 자체에서도 눈에 안 보이는 작은 먼지가 쉼 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타이어 등에서 떨어져 나와 바닥에 깔려 있다가 공기 중으로 떠오르는 것을 ‘재비산(再飛散)먼지’라고 한다. 가장 최근에 나온 2014년 자료를 보면, 수도권에서 발생한 이런 재비산먼지는 PM10(입자크기 10㎛ 이하)이 1만336t, PM2.5(입자크기 2.5㎛ 이하)는 2501t이었다.
같은 해, 도로 대기오염의 주범이라 불리는 경유차를 포함해 수도권 전체 차량이 뿜어낸(2차 생성분 제외) PM10은 3251t, PM2.5는 2991t이었다. 자동차 배기구에서 나오는 매연보다 최대 3배나 많은 먼지가 실은 도로 그 자체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도로 재비산먼지 발생원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느 거리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인체에 얼마나 위험한지 등을 다룬 국내 연구는 거의 없다. 재비산먼지 예산도 매년 감소세다.
도로 날림먼지가 얼마나 심각한지 확인하기 위해 지난 18일 한국환경공단의 재비산먼지 측정차량을 타고 인천광역시를 둘러봤다.
이날 오전 5시에 예보된 인천의 미세먼지 농도는 ‘보통’. 재비산먼지는 PM10 농도를 재는데 대기에서 보통 수준 PM10은 31∼80㎍/㎥이다.
환경공단은 비가 오는 날이 아니면 오전 10시 무렵부터 여섯 시간 동안 수도권을 돌며 재비산먼지를 측정한다. 인도가 있는 4차선 이상 도로의 끝차로를 돌며 측정된 값은 관할 지자체에 실시간으로 전송된다. 농도가 200㎍/㎥ 이상인 곳이 있으면 지자체가 도로청소를 하는 게 원칙이다.
가장 먼저 찾은 서해대로는 3월 평균 농도 150㎍/㎥를 기록한 곳이다. 차량 진행방향 오른쪽으로 인천항 선착장이 있어서일까. 윙바디, 레미콘, 덤프트럭, 대형 카고부터 바퀴 14개짜리 콘크리트 펌프카까지 육중한 덩치의 특장차들이 쉼 없이 도로를 달렸다.
같은 날 덤프 트럭 한 대가 측정차량 옆을 지나고 있다. 대형 트럭은 경트럭보다 10배 많은 도로 재비산먼지를 만들어낸다. 한국환경공단 제공 |
도로 먼지는 차체 중량에 비례한다.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대형 버스에서는 1마일(약 1.6㎞) 달릴 때마다 브레이크 패드에서 0.36g의 PM2.5가 떨어져 나온다. 경트럭의 10배에 달한다.
측정차가 지나간 서해대로 주변 150m 이내에도 어김없이 어린이집과 유치원 5곳, 초·중·고교가 4곳 있다. 중국발 미세먼지를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지역이자 자동차 매연, 도로에서 만들어진 먼지까지 이중삼중으로 덮어쓸 수밖에 없는 곳이다.
두 번째로 서해대로와 교차하는 축항대로를 찾았다. 항만 느낌이 강했던 서해대로와 달리 아파트와 병원, 중소규모 산업체가 섞인 여느 수도권 도로변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자전거 라이더도 몇 명 지나갔다. 그렇지만 결과는 반전이었다.
약 2㎞ 구간이 끝나고 확인된 재비산먼지 농도는 서해대로에 버금가는 256㎍/㎥, 최고농도는 무려 9644㎍/㎥나 됐다.
PM10 9644㎍/㎥란 얼마나 강한 농도일까. 아무리 중국발 미세먼지가 일시에 몰려온다 해도 이 정도 농도를 찍기란 불가능하다. 베이징에서도 1000㎍/㎥를 넘는 날은 손에 꼽기 때문이다. 황사 발원지 정도 돼야 9000㎍/㎥ 이상의 농도가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그러니까 도로는 매일 작지만 강력한 ‘미니 황사’를 계속 만들어낸다는 얘기다.
이동 측정차량을 타고 두 개 도로(매소홀로, 방축로)를 더 지나갔다. 주택가가 많아 비교적 도로청소를 자주 하는 곳이다. 방축로는 막 물청소차가 다녀갔는지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물기가 남아 있었다. 두 도로의 평균 농도는 각각 62㎍/㎥, 80㎍/㎥로 앞선 도로보다 훨씬 낮았다. 그럼에도 일부 지점에서 1182㎍/㎥까지 기록됐다.
한국환경공단 직원이 지난 18일 도로 재비산먼지 이동 측정차량을 탄 채 도로 먼지 농도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 한국환경공단 제공 |
도로 먼지는 자동차가 아무리 친환경 연료를 쓴다 해도 바퀴와 브레이크를 사용하는 한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지난 10여년간 연료부문에서는 하이브리드, 전기차 등 친환경차 확대와 연료 효율 향상 같은 진전이 있었다. 이에 비해 타이어나 브레이크의 기술적 발달은 더딘 편이다.
이런 이유로 유럽환경청(EEA)은 도로 PM10 원인 가운데 타이어 비산먼지처럼 비연소과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29%에서 2015년 55%로 늘어난 것으로 추산한다. 경유나 휘발유 연소로 나오는 PM10보다 더 많다는 의미다.
같은 기간 PM2.5에서도 비산먼지의 비중은 1%에서 37%로 급증했다. 미국 연구에서도 이르면 2020년, 늦어도 2040년이면 브레이크와 타이어가 경유·휘발유 같은 연료를 제치고 도로 PM2.5의 첫 번째 배출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 정부가 실시한 연구 가운데 가장 최근 공개자료는 2012년 결과다. ‘타이어 및 브레이크 패드 마모에 의한 비산먼지 배출량 및 위해성 조사’에는 비산먼지 발생 전망과 함께 인체 유해성도 정리돼 있다. 2010년 국내 자동차 주행거리를 토대로 유해물질 총배출량을 계산하면 타이어에서 나온 납은 220.94㎏, 카드뮴이 30.39㎏에 이른다. 브레이크 패드에서는 납이 무려 1만5790㎏이나 배출됐다. 모두 인체에 치명적인 중금속이지만 아직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미세먼지 종합대책에 따른 ‘도로 재비산먼지 및 생활오염원 관리 강화’ 예산은 올해 254억원이다. 내년에는 223억원, 2020년 210억원으로 계속 줄어 2022년에는 83억원으로 쪼그라들 전망이다. 환경공단의 도로 먼지 관련 예산도 지난해 8억8000만원에서 올해 7억6000만원으로 줄었다. 연구용역비가 전액 삭감된 결과다.
임인권 명지대 교수(기계공학)는 “매년 3700만개의 타이어가 국내에서 소모되고, 타이어 1개당 0.5∼1㎏이 먼지로 배출된다”며 “굉장히 중요한 배출원인데도 정부는 경유차 관리 등 몇몇 분야에만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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