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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한끼로 버티고 중도포기 속출…제주 예멘 난민 만나보니

입력 : 2018-07-01 19:17:23 수정 : 2018-07-01 21: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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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공무원·대학생 출신 등 상당수 / 어업 등 정부 알선 직장 부적응 호소 / 스마트폰·SNS 등 능숙하게 다뤄 / “출도 제한 풀리면 제조업체 가고파” / 체류 길어지며 생계 유지 ‘발등의 불’ / 돼지고기 ‘금기’지만 고깃집 취직도 / “술 안 마시는 무슬림 오히려 유순” / “무서워 채용 안할것”… 시선 엇갈려
“하늘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힘듭니다.”

지난달 28일 오후 제주시내 A 호텔에서 만난 예멘인 함자(가명·21)는 제주에 온 지 두 달 만에 체중이 절반으로 줄었다. 정부와 제주도의 알선으로 선원 일을 하다가 일주일 만에 포기했다. 그는 “뱃일 경험이 없어 멀미 때문에 너무 힘들고 음식도 입에 안 맞아 일을 할 수 없었다”며 “가져온 돈이 바닥나 밥도 하루 한 끼로 줄였다”고 말했다. 함자처럼 선원으로 취업했던 예멘 난민 신청자들 대부분이 중도에 그만뒀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 따르면 예멘인 취업자 중 10%가량 변동상황(중도 포기 등)이 있다.
지난달 29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주시 일도1동 제주이주민센터에서 주최한 인권 상담 프로그램에 참가한 예멘인들이 상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제주=뉴시스
대학생인 마무드(가명·21)는 “군대 징집을 피해서 왔다”며 “바다만 아니면 어느 곳이나 아무 일이든 원한다”고 말했다. 모하메드(가명·32)는 “하루빨리 출도 제한이 풀려 다른 지방으로 가서 제조업 등에 취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A 호텔은 한때 예멘인 150명이 머물렀던 곳이다. 두 차례 취업설명회를 통해 상당수가 일자리를 얻어 나가면서 지금은 30명가량 숙박 중이다. 2인실에 4∼5명이 쓴다. 호텔 식당에서 ‘할랄푸드’ 재료를 직접 준비해 조리해서 끼니를 함께 해결한다. 식사 당번도 정하고 1인당 하루 2000원씩 식비를 걷어서 한두끼 정도 식사한다.

이들은 대부분 예멘에서 대학을 다녔거나 교사, 공무원 등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에 다녔다. 이들은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루고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으로 정보를 교류했다. 일자리를 어업·양식업·농장 등 1차산업과 음식점 등 이른바 3D업종으로 제한하다 보니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들도 있다. 서비스업종은 이들의 채용을 꺼렸다.
이들은 매일 옥상에서 하루 5차례 기도한다. 이런 무슬림은 돼지고기를 금기시하지만, 일부 예멘인은 망설임 끝에 육가공업체나 흑돼지구이 식당에 취업했다. 당장 생계유지가 급해서다. 제주 예멘 난민 중 360여명이 생계비 지원을 신청했지만, 현재까지 심사를 통과해 지급된 사례는 없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이 지난달 14, 18일 예멘 난민 신청자들을 위해 연 취업상담장에는 400여명이 몰렸다. 난민법에 따르면 심사 기간이 6개월을 넘겨야 취업이 가능하지만, 예멘인들의 사정을 살펴 조기 취업이 허용됐다. 아직 제주에서 예멘인들이 범죄에 연루된 적은 없지만, 오랫동안 생계를 위협받으면 범법자가 될 수도 있어서다. 
지난 4월 예멘에서 온 사미(31) 부부는 서귀포시의 한 음식점에 취업했다. 부인 아파크(26)는 “돈이 떨어져 제주에 와서 부부가 따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며 “사장의 배려로 둘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식당에 취업하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취업 허용을 불편한 시선으로 보는 주민들도 적지 않다. 한 음식점 주인은 예멘인 채용 의향에 관해서 묻자 “그 사람들 무섭지 않나요”라고 되물었다.

예멘인 30여명이 머무는 호텔 사장 김우준(54)씨는 “처음 20∼30대 청년 150여명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대부분 수염도 깎지 않아 덥수룩해 섬뜩한 느낌도 있었지만 지금은 평범한 청년들처럼 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무슬림들은 술을 안 마시기 때문에 소란을 피우거나 시비를 거는 일은 보지 못했다”고 귀띔했다.
제주도민과 자원봉사자들의 구호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호텔 사장 김씨는 “제주시 노형동에 사는 캐나다 교민은 예멘인 30명의 한 달 숙박비를 선뜻 대납했다”며 “이웃 주민들이 간식과 옷 등을 갖다 주기도 한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은 예멘인 일곱 식구를 받아들였다. 그는 “난민들에게 숙소를 제공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난민 수용 반대 측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국제난민지원단체 ‘피난처’와 지구평화마을센터도 예멘인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기로 했다. ‘피난처’ 이호택 대표는 “당장 숙식이 힘든 예멘인들을 제주이주민센터 등을 통해 숙소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 내 33개 종교, 사회단체·진보정당 등은 ‘제주 난민 인권을 위한 범도민위원회’를 결성하고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 신청자들을 위한 지원과 연대 활동을 중점적으로 펼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소장은 “예멘 난민들이 낯설게 느껴지더라도 이들은 전쟁을 피해 평화를 찾아온 보호와 연대가 필요한 사람들”이라며 “공존해 본 경험이 부족한 타문화권 난민에 관해 서로 알아가고 이해하면서 혐오와 차별이 아닌 존중과 공존의 문화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천주교 제주교구 교구장 강우일 베드로 주교는 1일 제주교구민들에게 보내는 사목서한에서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배척과 외면은 인간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도리를 거부하는 범죄이고,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더욱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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