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리마대로는 러시아연방 사하공화국 수도 야쿠츠크에서 마가단에 이르는 2032㎞의 러시아연방 국도를 말한다. 사하공화국은 러시아연방을 구성하는 22개 민족 단위 공화국 중 하나다. 극동시베리아에 있는 사하공화국은 크기가 한국의 30배에 이르지만 살고 있는 사람은 100만명 밖에 안 된다. 사하인인 야쿠트인들이 주를 이루고, 러시아인과 퉁구스계 소수민족 에벤, 에벤키족들도 같이 살고 있다. 이 지역에 한때 영하 72도를 기록한 극한의 땅 오이먀콘이 있다. 콜리마대로는 사하공화국의 니즈니 베스탸흐, 한디가, 톰토르, 우스티-네라를 거쳐 마가단주의 수수만, 야고드노예, 팔랏카, 마가단으로 이어진다. 이 대로는 세계 5대강 중 하나인 레나강을 비롯하여 알단강, 인디기르카강, 콜리마강을 가로지른다.
1940년부터 5년간 진행된 콜리마대로 공사에 연인원 70여만명이 투입됐고, 2만7000명이 사망해 이 길을 ‘뼈 위의 도로’로 부르기도 한다. 도로 공사 중 죽은 사람들을 도로에 그대로 묻었다고 한다. |
한국에 소개된 샬라모프의 ‘콜리마 이야기’로 알려진 이 지역을 방문해 역사의 현장을 확인해 보고자했다. 콜리마대로에 아로새겨진 스탈린 시대의 정치적 박해에 대한 기억의 문제는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의 정체성 확립 과정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야쿠츠크에서 레나강을 배로 건넌 후 콜리마대로 탐사 출발 직전 강 기슭에서 기념촬영하는 탐사대원들. |
탐사 첫날 야쿠츠크에서 출발해 레나강을 건넜다. 자동차는 새벽 일찍 바지선을 타고 강 건너에서 일행을 기다렸다. 우리 일행은 수상택시를 타고 건넜다. 레나강을 건너면 바로 니즈니 베스탸흐이다. 세계 최북단 철도역으로, 시베리아 북부의 물류기지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이 지역은 메기노-칸갈라스에 속한다. 영토가 남한만큼 크지만 인구는 3만명 조금 넘는다. 추랍차를 지나면 탓타다. 전형적인 야쿠트인 농촌지역이다. 너른 들판에는 말과 소가 방목하는 광경이 이어진다.
톰포의 중심지인 한디가에서 첫 밤을 보냈다. 깨끗한 민박집이었다. 한디가에는 석탄 광산이 있다. 이곳 군청에서 군수와 의회 의장을 만났다. 군수는 젊은 사람이었다. 70대로 보이는 의장은 자신만만하고 달변이었다. 의장에게 ‘소비에트 시대의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물었다. 러시아에서 현안이 되고 있는 빈부격차, 복지 혜택과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고 있는지 듣고 싶은 질문이었다. 결론은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자유를 빼앗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이먀콘은 극한 지역이다. 콜리마대로를 벗어나 150㎞ 떨어진 톰토르에 저녁 늦게 도착했다. 민박집에서 차려준 소박한 야쿠트식 저녁을 먹고, 사우나를 했다. 이런 벽지에서 사우나를 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콜리마대로에서 톰토르 방향으로 100여㎞ 떨어진 곳에는 ‘죽음의 호수’라 불리는 호수가 있다. 콜리마대로 건설 중 희생된 시신들이 그대로 이 호수에 수장됐다. 그로부터 8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 호수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 콜리마대로 건설 중에 겪었을 정치범들의 희생에 숙연히 묵념을 올렸다.
마가단시 언덕의 ‘애도의 마스크’ 기념상, 사람 얼굴을 한 상징물은 마가단 집단노동수용소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
체르키스 산맥을 넘어 마가단에 들어서자 기후와 식생의 변화가 눈에 띄었다. 산에 순록이 좋아하는 이끼들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순록들이 살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그러나 순록은 보이지 않았다. 더위로 더 북쪽 지역으로 올라간 탓도 있지만, 순록치기를 생업으로 삼던 에벤족이 순록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강덕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부총장, 러시아연구소 소장 |
다음날 아침 야고드노예를 들렀다. 이곳엔 굴라크(강제수용소)에 관한 자료가 많은 곳으로 서방에 알려진 개인박물관이 있었다. 주인은 출타 중이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대신 군청에서 자료를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야고드노예에서 산길을 넘자 스텝과 같은 기후가 계속되었다. 멀리 산 위로는 얼음이 보였다.
팔랏카에 들어서자 분위기는 딴판이었다. 미국의 소도시를 보는 듯했다. 이 도시는 분수의 거리로 알려졌다. 다양한 디자인의 분수들이 저녁 노을에 아름답게 물을 뿜고 있었다. 마가단 북부 지역에서 마주한 버려진 마을 풍경이 떠오르며 무엇이 사하공화국의 진짜 모습인지 혼란스러웠다. 팔랏카에서 마가단까지 100여㎞ 포장도로였다.
오후 10시가 넘어 마가단 시내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그 시간에 저녁을 먹을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토로 그릴이라는 레스토랑이었다. 청춘 남녀가 어울려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은 유명한 유럽 도시의 펍에 온 기분이 들게 했다. 식사비도 싸지 않았다. 마가단에 오기까지 느껴졌던 침울했던 분위기와 너무 달랐다. 마가단의 첫날은 우리 일행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마가단에서의 둘째 날 시청 홍보 담당자들이 시내를 안내했다. ‘애도의 가면’이라는 충혼탑은 콜리마대로 건설 때 희생된 정치범들을 위로하고 기념하기 위해 1996년에 마가단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에 세워졌다. 소비에트 시절에는 가려져 있었던 역사였다. 마가단 역사박물관에는 콜리마대로 건설의 희생 장면들이 전시돼 있었다.
마지막 날 마가단 인근 올라 마을에 있는 에벤 박물관과 에벤어 학교를 방문했다. 에벤 문화와 에벤어를 지키기 위해 교사들이 애쓰고 있었다. 나가예프만 항구를 방문해 물류기지로서 마가단 항구 문제점도 살펴보았다. 인간이 뿌리내리기 힘든 극한의 땅 사하공화국에서 역사를 이루고, 삶을 영위해 온 이들의 모습을 소개한다.
강덕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부총장, 러시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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