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시장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권모(66)씨는 지난 1일 한숨부터 내쉬었다.
“어려워도 5남매를 잘 길러보겠다고 악착같았어요. 10원도 허투루 안 썼어요. 그러면서 왔다 갈 때마다 우리 부부한테 꼭 5만원씩 쥐여줬죠. 자기도 어려우면서…. 마음 씀씀이가 너무….”
그는 지난해 6월8일 사위 김모(당시 46세)씨를 잃었다. 사위는 아파트 외벽 보강 작업을 하다가 밧줄이 끊겨 땅에 떨어져 숨졌다. 사고가 아니라 황당한 이유로 빚어진 사건이었다. 아파트 주민 서모(42)씨가 아파트 11층 높이에 매달려 있던 김씨의 생명줄을 싹둑 잘라 버린 것이다. 외벽 작업 중 켜 놓은 휴대전화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사건 후 딸은 문밖으로 나가는 걸 극도로 꺼리고 있다. 사람들이 겁난다는 이유에서다. “네가 이렇게 있으면 아이들이 힘들단다”고 다독이곤 한다.
서씨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권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의 재판에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나갔다. “1심대로 무기징역을 선고해 달라”는 탄원서도 수차례 법원에 냈다. 2심은 서씨가 반성했다는 등 이유로 징역 35년으로 감형했고 이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법은 우리가 아니라 그놈 손을 들어주더라고요. 2심 선고 법정에서 고3 손주가 울부짖더군요. ‘그는 교도소에서 35년만 살고 나오면 되지만 우리는 평생 아빠 죽음을 안고 살아야 하는데 뭐하는 것이냐’고 말입니다.”
‘피고인이 잘못을 인정하며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죄하는 등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2심 판결문은 피해자 가족에게 상처를 안겼다. 권씨나 피해자 가족 누구도 사과를 받아본 적이 없다.
권씨는 가족 몰래 서씨가 수감 중인 교도소에 면회를 신청한 적이 있다.
사건 현장에 놓여 있던 피해자 밧줄과 죽음을 애도한 하얀 국화. 연합뉴스 |
“그놈한테 ‘큰 실수를 했다’, 이런 말이라도 꼭 듣고 싶었어요. 그러면 조금은 마음이 풀릴 것 같았어요. 그 부모한테서는 ‘자식 잘못 키웠다’는 사과 한마디라도 듣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사과받을 마음조차 사라졌다. 권씨 바람은 손주 5남매를 주름없이 잘 키우는 것뿐이다.
그나마 든든한 후원자들이 있어 고마울 뿐이다. 범죄피해자 가족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피해 회복을 위해 애써주는 이들이다.
“그래도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많더라고요. 서울만나교회 박상원 목사님, 서울에 사는 이하원 할머니, 송태호 울산범죄피해자지원센터 사무처장님이 너무 고맙습니다. 이 할머니는 자식들한테 매달 받은 용돈 중 10만원을 꼬박꼬박 고3 큰손주한테 통장으로 부쳐주고 있어요.”
박진영·김범수·배민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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