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법은 서양법과 서양법을 계수한 현대 우리나라 법의 모태입니다. 로마법이 우리나라 법에 대하여 차지하는 의미는 그야말로 본원적이지요. 특히 우리 민법 규정들은 라틴어로 된 로마법을 거의 수용하고 있어요. 나의 로마법 연구논문을 바탕으로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열어, 오랫동안 유지했던 판례를 바꾼 일까지 있을 만큼 로마법은 우리나라 법 이해에 매우 긴요합니다.”
우리나라 로마법 학계를 개척·주도한 최병조(67)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최 교수는 라틴어 로마법 원전을 본격 연구하고 세계 학계에서 한국을 대표해 온 로마법의 거목이다.
그간 연구 성과를 오롯이 집약한 ‘로마법의 향연’(도서출판 길 출간·사진)을 최근 출간한 최 교수를 만났다. 인터뷰는 서울대 관악캠퍼스의 연구실에서 3시간여 동안 이어졌다.
―요즘 여론에 오르내리는 스캔들을 보면서 착잡할 텐데.
“(자신이)추구하는 목표지향성으로 인해 엄연한 법칙을 무시한다. 법이 쉽게 무시되는 사회는 법공동체로서의 자격이 없다. 극복해야 할 우리 법문화의 단점이다.”
―법 전공자들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가 높기 때문이 아닌지.
“법은 전공자들에게 맡기면 되는 것처럼 오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법 전공자들에 대한 반감 또한 매우 강하다는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
―법치의 위기적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가.
“우리나라의 법제는 분명히 서구의 근대적 법제를 수용했다. 그러나 법학도와 법률가들을 포함하여 법의 정신에 대한 체득이 대단히 미흡하다. 내 전공인 로마법을 연구하는 동안 조선시대의 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법조문이나 법규정보다도, 법공동체 구성원들의 법을 대하는 행태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인식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어찌하면 좋은가.
“넓게 보자. 오늘날의 위기적 상황은 정신문화의 위기이다. 법제도와 법규정의 형식적 수용만으로는 선진된 법공동체를 구축할 수 없다. 요컨대 법률보다는 법문화 전반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법이란 사실로부터 출발하여 규범적 판단을 하는 것이지, 규범을 출발점으로 삼아 사실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다.”
―국내 대학의 법 소양 교육은 어떻게 보는지.
“우리 대학교육에서 사회과학을 하는 곳조차도 법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졸업생을 배출하는 현상은 심히 우려된다. 늦었지만 적어도 고등교육을 받은 국민이라면 법의 기본에 대한 일정한 소양을 필수적으로 갖추고 사회에 진출해야 한다.”
―로마법을 전공하게 된 계기나 동기는.
“중·고교 때 자연과학, 수학에 관심이 많았으나 적록색약이고 눈도 약시여서 이과를 포기하고 문과를 택했다. 그 당시엔 무엇이 되겠다고 한 사람은 없지 않나? 친구와 함께 함께 법대에 진학했지만, 사법시험이나 행시보다는 로마법에 특히 관심이 가서 유학을 갔다.”
―솔직히 그 당시 우리나라 법대에 로마법 연구 강좌가 있었나.
“법대 재학 시절인데 해방 이후 몇 십 년이 지났건만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아서 묵은 먼지만 켜켜이 쌓인 책들을 살펴보다 일본인들이 공부한 흔적들이 책 여기저기에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일본인들이 메이지유신 이후 서양법을 공부하면서 처음부터 영국인 교수를 초청하여 로마법과 영국법의 비교 방식으로 로마법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한 세대가 지나자 비로소 일본인이 일본인에게 로마법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미 20세기 전반에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일본인 로마법 학자가 배출된 상태였다.”
―로마법 연구가 우리나라에선 걸음마 수준이었나?
“유학을 결심할 무렵 주로 민법 교수님들에 의해 로마법 강의가 겨우 개설되는 형편이었다. 로마법을 공부하려면 로마로 가야 하지 않을까 해서 이탈리아 대사관에 장학금을 알아보았는데, 외국인을 위한 장학제도가 없었다. 그래서 독일로 가게 되었다.”
―의미 있는 유학 생활이었다고 들었다.
“괴팅겐대학에서 1950년대 초에 연구소를 세운 프란츠 비악커(1908∼1994) 교수가 쓰던 책상을 주로 내가 썼다. 이 책상은 19세기 로마법의 대가였던 루돌프 폰 예링(1818∼1892)이 쓰던 목재 책상이었다. 튼튼한 고가구가 학맥을 묵묵히 이어주었다고나 할까. 박사학위 논문이 예링의 ‘계약체결상의 과실’에 관한 것이었다. 나름 깊은 인연이라 할 수 있다. 최고평점(summa cim laude)을 받은 저의 학위 논문이 괴팅겐대학 법학학술총서로 출판되어 나름 보람도 느꼈다. 로마학 대가인 테오도르 몸젠(1817∼1903)의 생가도 보았고, 2011년 1월 괴팅겐학술원 종신교신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아마 동양인으로선 처음이지 싶다. 법이라면 흰 종이에 검은 텍스트로 일관하는 우리나라 학업 환경과는 매우 다른 경험들이었다.”
―최근 출간한 ‘로마법의 향연’이란 어렵고도 재미있는 제목의 저서이다.
“로마법 연구의 경우 극소수의 전공자들이 생산한 논문이니 일반인들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런 표피를 한 꺼풀 벗기고 역사의 흐름 속을 들여다보면, 로마법은 어마어마한 위용을 자랑한다. 오늘날 전 세계의 모든 법은 로마법의 직간접적 후예이다. 기억하기 좋게 내가 개발한 표현이 있다. ‘서양의 역사에서 꼭 기억해야 할 3R, 종교개혁(Reformation), 문예부흥(Renaissance), 그리고 로마법의 계수(Reception of Roman Law)가 그것이다. 종교개혁은 고대 유대교의 원천으로, 문예부흥은 고대 그리스 학예의 원천으로, 로마법의 계수는 고대 로마 법문화의 원천으로, 모두 과감하게 방향을 튼, 근대를 개혁한 큰 사상적 흐름이었다. 그러나 종교도, 문학과 예술도 중요하지만 법만큼 인간의 삶에서 필수적인 것이 없다. 이 법의 영역을 변혁시킨 인류의 대유산이 바로 로마법이다.”
―국내 연구 성과나 연구 경향은 어떤가.
“이를테면 원사료의 공부를 위해 나의 주관 하에 현재 로마법 강독회를 매주 열고 있다. 개관하면 로마 민사법 중심의, 특히 현행 민사법과의 비교법적 고찰에 중점을 둔 연구, 로마의 형법, 키케로의 법정변론 등에 대한 연구가 주목된다. 하나의 특기할 흐름은 로마법을 토대로 조선시대의 법문화를 성찰해보는 비교법문화론적 작업이다. 조선시대 법제사학을 명료하게 인식하지 못했거나 드러내지 못했던 특징들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세계적인 연구 경향은.
“조심스럽지만 한두 마디 한다면 로마법연구는 성경연구와 마찬가지로 항상 새롭게 재해석되면서 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마법대전’의 재발견 이래 800년 넘게 지났다. 모든 법률문제가 그렇듯이 항상 새로운 시각과 관점에서 새로운 해석이 제기되고, 다시 학계의 논란을 거치면서 교정되고 새로운 인식에 도달한다. 성경연구와 유사하다는 게 그것이다. 오늘날 현대의 언어감각에 맞는 새로운 번역들을 다시 진행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과거의 오역을 바로잡고 현행법으로 단련된 새로운 인식을 담아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
―인문학 부흥을 위해 어찌해야 하는가.
“로마법을 하다 보면 자연히 범인문학적 관심과 소양이 필요하다. 어느 사회이든 그곳의 법현상을 이해하려면 그 사회의 제반 문물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로마인들의 법을 이해하려면 로마인들과 그들의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러한 지식 지평의 확대는 그 자체로 인문학적 소양의 확대이다. 우리가 흔히 잊고 있지만 법이란 것 자체가 가장 인문학적이고, 가장 사회학적이고, 가장 정책학적인 현상이다. 인간의 삶을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전체로서, 총체적으로 다루는 법이야말로 가장 인간의 삶에 밀착된 현상이다.”
―우리 대학의 인문학 교육을 어떻게 보시는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인문학을 하시는 분들이 인문학의 영역 안에만 머무는 타성이다. 인문학의 영역을 흔히 문·사·철로 표현한다. 인문학을 통해 지·정·의를 함양하고, 인간사회를 이해하는 안목이 길러진다. 그러나 인간은 마음과 정신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다. 몸이라는 실체 즉, 심신의 이원적 존재이다. 인문학의 세계에만 매몰되면 관념화되기 쉽다. 타 영역에 대한 불균형적 시각이나 심지어는 무관심과 거부로까지 연결되는 현상이 제일 걱정스럽다.”
―후학들에게 당부하고픈 말은.
“아직 마땅히 마음 놓고 연구할 지위에 있지 않은 제자들을 보면서 안타깝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제자들과 로마법 강독회를 매주 갖는다. 남들이 경험하기 힘든 허심탄회한 지적 토론의 장이 열린다. 아무런 현실적 이해타산 없이, 로마법률가들 사이의 법률 토론을 우리 식으로 답습하면서 법의 세계를 즐긴달까. 그로부터 얻는 법리적 통찰은 결과적으로는 현행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저 한 가지 당부하고 싶다면, 적극적인 자료 발굴과 함께 좀 더 철저히 분석하고, 원사료의 문구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주도면밀함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래 법조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인간사에 두루 관심을 갖고, 특히 판단의 근거가 되는 사실의 확보에 힘을 기울여줄 것을 당부한다. 우리의 법문화 풍토에서는 자칫 관념론적 성향이 무의식적으로 관철될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법은 막중하다. 그 무거운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실력과 양심과 용기를 배양하기 바란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최병조 교수는…
△1953년 부산 출생 △서울대 법대 졸업 △독일 괴팅겐대 법학 박사학위 취득 △서울 법대, 법학대학원 교수 △한국법사학회 회장 △한국서양고전학회 회장 △독일 괴팅겐 학술원 종신 교신회원(2011) △서울대 명예교수(2018) △현암법학저작상(1998), 서울대 학술연구상(2012), 한국법학원 법학논문상(2013) 영산법률문화상(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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