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버스로 다닐 때는 오줌이 마려워 죽을 지경이 돼도 휴게소에서 내리지를 못했어요. 글자를 모르니 어느 버스를 타야 할지 찾을 자신이 없었거든요. 자식들한테도 글을 모른다고 차마 말할 수가 없었어요. 지금은 글자를 아니 옛날에 겪은 이야기를 하면서 웃지요.”
올해 전국 성인 문해(文解)교육 시화전에서 ‘숨바꼭질’이라는 시로 최우수상을 받은 정을순(경남 거창군 문해교실)씨의 문해 소감이다.
문해란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일 또는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정씨처럼 뒤늦게 문해의 기쁨을 누린 이들의 사연은 울림이 크지만 아직 우리나라 성인 100명 중 7명은 비문해자의 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글날인 9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바른미래당 이찬열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국가평생교육진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성인문해교육 현황’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비문해 성인 인구는 311만명(7.2%)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읽기와 쓰기, 셈하기가 불가능한 경우다. 한글을 깨치지 못한 이들까지 포함된 숫자로 초등 1∼2학년 수준의 학습이 필요하다.
이들보다는 약간 낫지만 복잡한 내용의 정보를 이해하지 못하는 ‘실질적 문맹’인 성인도 22%가량으로 파악됐다.
기본적인 문자 해독은 가능하지만 일상생활 활용이 미흡한 성인 인구는 217만명(5.1%), 단순한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공공 및 경제생활에서의 읽기, 쓰기, 셈하기가 어려운 성인 인구는 432만명(10.1%)에 달했다. 즉, 성인 960만명(22.4%)가량이 일상생활 또는 공공·경제생활에서 문해력이 떨어져 어려움을 겪는 실질 문맹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실질 문맹률은 여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심각한 수준이다. 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결과 한국은 성인 실질 문해율이 상위 22개국 중 최저 수준이었다.
실질 문맹을 해소하지 못하면 의약품 복용량 설명서나 각종 서비스 약관 등 일상적인 문서 이해가 불가능하다. 디지털 문맹이 되기 쉬워 금융 사기 등 피해 위험에도 취약해진다.
이에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저학력·비문해 성인 학습자에게 실시 중인 ‘성인문해교육 지원사업’의 참여 학습자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2015년 2만2999명이었던 학습자는 지난해 2만7211명으로 4년간 18.3% 증가했다.
지난해 수업을 수강한 학습자는 70대가 49.6%(1만3501명)로 가장 많았으며 60대가 23.7%(6453명), 80대 이상이 15.1%(4107명)의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20대 학습자는 4년간 지속적으로 줄어 2016년 572명(2.5%)이었던 인원이 388명(1.5%)으로 감소했다.
세종=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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