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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를 겨누는 소리없는 방아쇠 당신의 악플은 흉기입니다 ['악플 테러' 추방하자]

입력 : 2019-10-21 06:00:00 수정 : 2019-10-21 10: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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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적 공격에 상처받는 연예인들 / 스마트폰·SNS 등 발달로 댓글 문화 확산 / 오디션 프로그램 등 대중 개입 크게 늘어 / 사이버 폭력 ‘소비자 권리’로 포장되기도 / 최근 아이유 등 악플러들 고소 강경대응 / 불특정 다수 대상들 맞대응 하기 어려워 / 상당수 선처… 처벌 이어지는 경우 적어 / 대중의 평가 강박감에 우울증 호소 많아 / 기획사들 빠른 해결 위해 약물치료 권유 / 부실한 심리건강 관리 자성 목소리 높아

“저더러 죽으라고 하더라고요. 제 얼굴이 때리고 싶게 생겼다고도 했어요. 저는 이런 말을 들어도 괜찮은 사람일까요?”

연예인 A씨는 20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A씨는 데뷔 직후부터 악성 댓글의 집중 포화를 맞아왔다. 지인들의 우려에 ‘악플도 관심’이라며 웃어보이기도 했지만 그의 마음은 서서히 병들어갔다고 한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과 인신공격, 성적인 발언들은 지금도 그의 머릿속을 끊임없이 맴돌고 있다. A씨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나를 비웃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며 “부모님께도 죄송하고 나의 존재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악플은 ‘소비자의 권리’?

최근 가수 겸 배우 설리(본명 최진리·25)가 생을 마감하면서 무분별한 악성 댓글 관행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앞서 배우 최진실, 정다빈, 가수 유니 등의 죽음이 폭력적 인터넷 문화에 경종을 울렸으나 유명인들을 향한 사이버 테러는 오히려 거세졌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의 발달로 댓글 문화가 악플이 쉬운 환경이 만들어진 탓이라고 분석한다. 한 경찰서 사이버수사팀 관계자는 “요즘에는 거의 모든 연령대에서 스마트폰을 활발하게 쓰다 보니 언제 어디서든 뉴스 기사나 SNS에 댓글을 달 수 있다”며 “입건되는 사람도 어린 학생뿐 아니라 주부, 노년층 등 연령대가 다양하다”고 말했다.

특히 대중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연예인 선발과 평가에 직접 개입하고,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해 홍보에 나서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연예인에 대한 사이버 폭력이 일종의 ‘소비자 권리’로 포장되고 있는 것이다. 한 걸그룹 소속사 관계자는 “‘직캠족(직접 연예인의 영상을 촬영해 배포하는 집단)’은 홍보라는 미명 하에 멤버들의 속바지까지 노골적으로 촬영했다. ‘뜨려고 벗는다’는 오해와 성적인 댓글들이 쏟아지면서 멤버들이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기획사들은 악플러를 고소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서는 추세다. 가수 겸 배우 아이유 소속사 카카오엠은 지난 18일 “아이유를 향한 무분별한 악성 댓글과 허위 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 성적 희롱, 인신공격 등의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해 이에 법적 대응을 진행한다”며 “추후에도 아티스트를 향한 악의적인 비방 행위에 대해 협의나 선처 없이 강력히 대응할 것이며, 무분별한 악성 댓글 근절을 위해 지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가수 박지민도 같은 날 성희롱 댓글에 대해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그러나 악성 댓글을 남기는 불특정 다수에게 모두 대응할 수 없는 데다 고소를 하더라도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설리 역시 악플러를 고소했다가 “동갑내기 친구를 전과자로 만드는 게 미안했다”며 선처하기도 했다,

◆연예계 자성 목소리…“우울증 진단 시스템 필요”

연예계 내부에서는 부실한 심리건강 관리체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그룹 신화 김동완은 “어린 친구들이 제대로 먹지 못하고, 편히 자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건강하고 밝은 미소를 보여주길 바라는 어른들이 넘쳐나고 있다”며 “빠른 해결을 위해 약물을 권유하는 일을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 대형 기획사들의 안일한 대처는 접촉 없이도 퍼지게 될 감염병의 숙주가 될 수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실제로 대중의 평가와 성공에 대한 강박으로 우울감을 호소하는 연예인이 꽤 많지만 이들은 고된 일정으로 우울감을 극복할 시간조차 갖기 어렵다. 최근 방탄소년단의 한 달여 장기휴가에 대해 긍정적인 목소리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아이돌 그룹 중 한두 명 정도는 우울증 약이나 수면유도제를 복용한다”며 “일정이 빡빡하다보니 근원적 문제 해결보다는 아무래도 정신과 상담과 약물치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증언했다. 걸그룹 멤버 B씨도 “아무래도 대중에게 항상 주목을 받고 일정도 불확실하다보니 스트레스나 고통을 받더라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혼자 감내한다”고 토로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하는 아이돌은 심리적으로 더욱 취약하다. 서울 구로구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 박종석 원장은 “어린 나이에 데뷔한 아이돌은 정신적인 우울과 불안, 과도한 관심에 대한 내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대중 앞에 놓인다”며 “가족과 공유한 시간이나 친구들과의 경험을 갖지 못했다는 박탈감에 대한 보상만큼, 과도한 경쟁에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열등의식이 자존감에 상처를 준다”고 분석했다.

정부와 연예기획사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지해 대안 마련을 위해 움직여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4년 ‘대중문화예술인 표준전속계약서’를 개정하며 ‘을(연예인)의 인성교육 및 정신건강 지원’ 조항을 추가했다. 연예인 본인이 건강에 이상신호를 감지하면 즉각 기획사에 활동 중단을 요청할 수 있으며, 기획사는 연예인의 신체적·정신적 준비상황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같은 조항은 강제성이 없는 권고 사항에 불과하다. 영세한 기획사가 전속 심리상담사나 정기적인 상담 프로그램 같은 체계적 관리를 갖추기도 어렵다. 박 원장은 “대형기획사들이 대학병원과 연계해 연습생 시절부터 정신상담 프로그램을 갖고 있긴 하지만 실효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연예인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매니저나 주변 스태프, 연예인 가족의 정신적인 인지 교육이 더 중요하다”며 “주변인들에 대한 교육은 물론 우울증 조기 발견 및 진단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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