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국회는 소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을 갖고 여야 간에 치열한 공방이 있었다. 이 법안들은 무제한 토론제도로 시간이 걸렸지만 여당과 소수 야당의 공조로 통과됐다. 이 일련의 과정에 위헌·위법을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여전히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국회는 회의체 헌법기관이다. 국회가 다수결로 안건을 결정하지만, 이 다수결은 질적으로도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사결정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뿐만 아니라 충분한 토론이 보장되도록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얼마 전 단행됐던 검찰인사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견해가 표출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유는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었는지, 아니면 검찰총장이 법무부장관의 명령을 듣지 않았는지 때문이다. 검찰인사에 관한 검찰청법의 구조는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 대통령의 관계에서 검찰총장의 의견을 반영해 법무부장관이 인사안을 만들어 제청하면 대통령이 결정하는 방식이다. 정부조직법에 검찰청은 법무부장관 산하의 국가기관이다. 법무부장관은 대통령의 통할하에 있고, 대통령은 정부의 수반으로서 법령에 따라 모든 중앙행정기관의 장을 지휘·감독한다. 국가의 최고규범인 헌법에는 대통령이 행정권의 수반으로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무원임면권을 행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헌법과 정부조직법, 검찰청법에 의한 검찰조직과 인사에 관한 규정은 국가조직의 합리적 운용을 위해 만들어진 체계일 뿐이다. 대의제 민주주의하에서 국가기관의 권한은 국민을 위한 책무에 불과하다.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국가기관 간의 관계는 명령·복종의 관계가 아니라 법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고 책임을 지는 관계일 뿐이다.
국회의 입법절차는 헌법에 합치돼야 한다. 독일, 프랑스와 같이 입법절차에서 법률안에 대한 합헌심사를 강화해 위헌 논란을 불식해야 한다. 국회는 입법자율권을 스스로 보장하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번 검찰인사와 관련된 논란에서 보듯이 국가기관 간의 견제장치가 부족하다. 특히 검찰뿐만 아니라 수사기관으로 거듭나는 경찰, 그리고 새로운 검찰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대해서는 인사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국가기관 간의 견제장치는 국민의 국가권력을 감시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권력분립원칙은 집중된 권력의 심각한 폐해로부터 나온 경험의 산물이다. 그래서 근대국가 이후 국가권력은 입법, 행정, 사법으로 나누고 권한을 배분함으로써 권력 간에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하고 있다. 집중된 권력과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권력을 가지면 이를 휘두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이를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윤리며 도덕이다. 인간사회에서 윤리·도덕교육이 강조되는 것은 이유가 있다.
권력은 아편과도 같다고 한다. 중독성이 강한 마약에 빗대어 권력을 표현하는 것을 보면 권력은 질병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이다. 나만 옳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오만은 다른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고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려는 독선의 출발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권력의 균형을 이루는 견제장치가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사법이 입법과 행정을 견제하지 못하고, 입법이 행정과 사법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 헌법은 입법권의 민주적 정당성, 행정권의 법치행정, 헌법과 법률에 의한 사법권을 강조하고 있다. 국가권력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야 국정의 합리적 운영이 가능해진다.
권력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꽃은 피어도 열흘을 가지 못함)이라고 했다. 살아 있는 권력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독선과 아집은 스스로를 붕괴시킨다. 민주주의가 소수를 보호하는 것은 세상에 절대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소수가 다수로 될 수 있으며 가치도 변하기 마련이다.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의 준법 의지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동력이다. 국가가 발전하고 법치가 확립되려면 국민의 법의식이 깨어 있어야 한다.
김상겸 동국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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