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국가가 만들어준 증거를 가지고 왔는데 도서관 회원증도 못 만드는 게 말이 되는지….”
서울의 한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사서 박모씨는 지난해 도서관을 찾아온 한 어르신을 돌려보낸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회원 가입을 위해 도서관을 찾은 노인은 주민등록증을 가져왔음에도 본인명의 휴대전화가 없어 회원증 발급에 필수적인 온라인 가입 절차를 완료할 수 없었다. 또 다른 인증 수단인 아이핀(IPIN·인터넷 개인식별번호) 역시 본인명의 휴대전화가 없으면 온라인으로 발급받기 어려웠으므로 박씨는 “구청이나 동사무소에서 아이핀 발급부터 받아오셔야 한다”며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을 돌려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박씨는 지난달 15일 이 같은 경험을 담아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올렸다. 청원은 사서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를 위주로 퍼져나가며 3일 현재 3200명의 동의를 얻은 상태다. 박씨는 “어린이 도서관에서는 인증절차 때문에 이용객을 돌려보내는 일이 하루에 10번은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이라며 “공공성을 중시해야 할 도서관이 정보에 가장 취약한 계층인 어르신들과 아이들을 정보로부터 멀리 쫓아내선 안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공공도서관 이용증 발급 시 필수인 인증단계가 노약자들을 도서관 이용을 어렵게 하는 장벽이 되고 있다. 2014년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 제24조 2항(주민등록번호 처리의 제한)으로 인해 공공기관에서 직접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게 불가능해지면서 공공도서관들 역시 개인정보를 직접 수집하지 못하고 모바일 인증이나 아이핀 인증을 거쳐 이용증을 발급해주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본인명의 휴대전화를 가진 일반 성인들의 경우 문자 한 통이면 인증을 완료할 수 있어 어려움을 느끼지 않겠지만 휴대전화가 없는 노인들이나 아이들의 경우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보호자가 있는 14세 미만 아동이라면 부모 명의 휴대전화 인증을 거쳐 아이 명의의 아이핀 아이디를 발급한 후 주민등록등본과 신분증을 가지고 도서관을 방문해야 이용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보호자가 없는 노인들의 경우 상황은 더 복잡하다. 본인이 직접 구청이나 동사무소에 방문해 아이핀을 발급받은 후 도서관을 재방문해 인증절차를 거치는 수밖에 없다.
‘도서관법’ 제8장에 따르면 ‘도서관은 모든 국민이 신체, 지역, 경제, 사회 여건에 관계없이 공평한 도서서비스를 제공받는 데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또 ‘국가 정보화 기본법’ 제32조는 “국가기관 등은 인터넷을 통하여 정보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 장애인, 고령자 등이 쉽게 웹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이 같은 법 조항에도 불구하고 특정 집단이 도서관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은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도서관정책과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법이 강화돼 도서관이 직접 본인인증을 받기 어려워져 어쩔 수 없다”며 “현장에서 불편함이 있다는 걸 정책부서에서도 인지하고 있지만 해결책을 내놓으려면 장기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 도서관의 경우, 대부분이 여전히 온라인 가입 외의 수단으로 이용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영국 런던시청 사이트에 소개된 런던 도서관 이용법을 보면 온라인 가입도 가능하지만 신분증과 주소증명서류를 구비할 경우 도서관을 찾아 현장에서 바로 이용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미국 공공도서관 역시 신분증과 주소 증명서류만 있으면 현장에서 이용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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