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이 감염병과의 전투에 돌입했다. 급속히 확산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싸움의 대상이다. 장병 외출과 외박, 휴가, 면회를 통제하고 야외훈련을 중단했지만, 한때 수천명이 코로나19의 여파로 격리됐다. 육군 1개 사단 병력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군 내 확산을 막기 위해 대구지역에 한시적으로 재택근무를 실시토록 하는 초유의 조치가 내려지는 이유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대민 지원도 강화되고 있다. 2일까지 코로나19 대응에 투입된 육군 병력은 1만1000여명, 장비는 110여대에 달한다. 북한군과의 전투에만 골몰하던 군이 감염병이라는 보이지 않는 비(非)군사적 위협에 맞서야 하는 준전시 국면이 펼쳐진 셈이다.
◆제독차에 이동식 의무실까지…총력 지원 태세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대구지역에는 군 장비들이 대거 투입되고 있다.
육군은 지난달 26일부터 대구에 이동전개형 의무시설(DEPMEADS) 2대를 긴급 지원했다. 임상병리실과 에어텐트, 기계실 등으로 구성된 의무시설은 음압기와 방사선 장비, 혈액 검사 장비를 갖춰 선별진료소로 쓰이는 중이다. 음압기를 통해 내부 공기 유출이 차단된 진료소 내부에서는 검체 채취를 통해 감염 여부를 확인한다.
2011년부터 4대가 운용중인 이동전개형 의무시설은 의료 지원이 필요한 지역으로 신속히 이동,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 필요한 경우 건물에 연결해서 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중국 우한 교민이 귀국 후 수용됐던 충북 진천군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과 충남 아산시 경찰인재개발원에서도 사용됐으며,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에도 의료지원에 쓰였다.
코로나19 방역 작업에는 군 화생방 제독차량이 투입됐다. 전시에는 북한군의 화학무기로부터 아군을 지켜주는 존재지만, 코로나19 사태에서는 국민을 감염병으로부터 방어하는 장비다.
육군은 대구 주둔 제50사단 제독차량 외에 제7군단과 미사일사령부 소속 제독차량 14대를 2일 50사단으로 파견했다. 향후 상황을 고려해 70여 대를 추가 지원할 예정이다.
방역 활동에 나서고 있는 제독차량은 KM9이다. 코로나19 방역에 투입된 모습에 예비역들이 “아직도 쓰고 있냐”고 했을 정도로 구형이지만, 화생방 작전에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다. 1970년대 말에 실전배치된 KM9은 1900리터의 소독약을 탑재, 화학무기 공격을 받은 병력이나 장비를 소독하는 용도로 쓰인다.
KM9보다 신형인 K10도 코로나19 방역에 투입된다. 2000년대 초부터 군에서 쓰이는 K10은 2500리터의 소독약을 실을 수 있다. 인원과 장비, 지역 소독을 함께 할 수 있어 효율적인 화생방 대응 작전이 가능하다.
대량살상무기(WMD) 대응 부대인 국군화생방방호사령부도 4일 특수 장비를 이용해 경북대와 국군대구병원 등 대구 지역 방역을 지원했다.
경북대 방역에는 화학 및 생물학 작용제로 오염된 지역을 제독하는 과산화수소 이온 발생기가 쓰였다. 과산화수소 이온 발생기는 과산화수소액을 플라스마 상태의 활성화 이온으로 생성해 탄저균과 메르스, 에볼라, 코로나19 바이러스 등을 제거한다.
사령부 시설내부방역팀은 신형 양압식 공기호흡기 2형을 착용했다. 기존 양압식 공기호흡기에 동력식 공기정화장치를 부착한 최신형 호흡기로 운용시간을 기존의 40~50분에서 8시간으로 대폭 늘렸다.
◆‘코로나19 공포’에 훈련 연기…비군사적 위협 커져
코로나19는 전통적 차원의 안보 위협에 익숙한 세계 각국 군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오는 9일로 예정된 한미연합지휘소훈련(CPX) 연기에 합의한 미국은 이스라엘과의 연합훈련을 취소했다고 미 CNN이 3일 보도했다.
이글 제네시스(Eagle Genesis)라는 이름의 연합훈련에는 코로나19가 급속히 번지고 있는 이탈리아 주둔 미군 공수부대가 참가할 예정이었다. 지중해 한복판에 위치한 이탈리아는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유럽 내에서도 미군 주둔 규모가 큰 편이다.
한국, 중국과 더불어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발생하는 이탈리아의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훈련 준비를 위해 이스라엘에 먼저 도착했던 미군 60여명은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으나 이스라엘의 요청으로 지난달 유럽 기지로 철수했다.
이스라엘과의 연합훈련이 취소되면서 미국이 유럽 국가들과 함께 진행할 훈련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은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북유럽 및 동유럽 국가들과 대규모 연합훈련을 실시해왔다. 하지만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지역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감염병 확산 방지 차원에서 훈련 축소 및 연기 등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중동지역을 담당하는 미 중부사령부는 휴가를 취소하고 태평양 지역 항구에 정박했던 함정은 해상에 2주간 격리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라크 주둔 미군은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한 쿠웨이트의 규제 조치로 병력과 장비 조달을 항공 운송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미 국방부는 코로나19가 미군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는데 고심하고 있다.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3일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가 훈련과 작전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사령관들과 소통하고 있다”며 “동맹의 준비태세도 평가대상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밀리 의장은 “에스퍼 장관이 (한국에) 일부 의료진의 추가 파견을 지시했고 마스크와 장갑, 보호복 같은 보호장비도 보내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한반도에서의 훈련 일부를 조정했고 한국 합참의장이 연기를 요청했다”며 “조정이나 변화이 필요성과 관련해 다른 훈련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군은 현재 태국과 시행하는 코브라골드 훈련과 유럽에서 실시하는 디펜더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도 대규모 군사훈련을 중단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발생한 우한을 지원하기 위해 중국군이 항공기와 차량, 의료진 등을 대거 투입하면서 군사훈련에 차질을 빚고 있다. 우한은 중국군 남부전구와 동부전구 병력을 훈련장인 네이멍구로 옮기는데 이용되는 철도 요충지다. 다소 진정 국면을 보이고 있는 코로나19가 다시 확산하지 않도록 병력의 이동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감염병을 비롯한 비군사적 위협이 국가간 전쟁 못지 않게 국가 안보를 뒤흔드는 ‘폭탄’이라는 점이 입증됐다. 메르스 등을 통해 감염병이 안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례가 있었으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대응은 늦게 이뤄졌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면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선진국을 중심으로 감염병 등 비군사적 안보를 위한 정책적 대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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