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은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개발된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인해 일자리에서 밀려난다면(또는 노동에서 해방된다면), 그런 시대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단순 반복 업무를 하는 노무직은 물론 제조업, 서비스업, 화이트칼라 등 분야를 망라한 직업들이 AI와 로봇으로 대체되는 상황에서 경제학자와 AI공학자, 노동자들은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노동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낙관과 비관, 또는 무지와 무관심 사이에 이미 기술은 코앞까지 다가왔다. 우리는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들어봤다.
2일 세계일보가 AI공학자와 사회·경제학자, 노동자 등 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응답자의 58.6%가 AI시대에 인간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변화가 없을 것(28.5%)이라는 응답자의 약 2배, 늘어날 것(12.9%)이라는 응답자의 4.5배에 달하는 수치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서 각 응답자들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들여다보면 AI가 인간의 노동을 얼마나 대체할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함을 알 수 있다. 현재 AI대학원에 재학 중인 한 대기업 엔지니어는 “일자리는 줄어들 것 같다”면서도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으려면 인간에 준하는 지능과 판단력을 지닐 수 있어야 하는데, 돌발 상황이나 상식에 의한 판단 혹은 윤리 문제로 논리를 뒤집는 결정을 하는 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반면 한 국책 연구기관 소속 정보학자는 “AI로 인해 신산업과 새로운 사업이 등장할 것이기 때문에 일자리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는 일에 따라 일자리의 미래, 노동의 내일에 대한 걱정은 강도를 달리했다.
◆“제조업·금융업 고위험… 예술·여가서비스업은 안전”
그렇다면 응답자들은 AI의 확산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업종을 각각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향후 전망이 가장 어두울 것으로 꼽힌 업종은 단연 제조업(75.7%)이었다. 이 분야는 지금도 상당 부분 자동화가 이뤄졌지만, 앞으로는 AI기술 발전과 함께 비정형화된 작업까지 로봇이 수행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금융보험업(71.4%)과 운수업(50%)에서도 인간이 설 자리가 좁아질 것이라고 응답자들은 생각했다. 금융업의 경우 이미 자동화의 여파가 나타나고 있다. ATM, 모바일뱅킹 등으로 비대면 거래 비중이 늘어나면서 오프라인 지점 수를 줄이는 추세가 짙어지고 있다.
반대로 인간이 경쟁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업종은 예술·서비스 및 여가 관련 서비스업(75.7%), 출판·영상·방송통신 및 정보서비스업(47.1%), 보건 및 사회복지사업(38.6%) 순으로 나타났다. 창의력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 있을 것이라고 응답자들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화·예술 분야의 상당 부분이 AI에 대체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인공지능 기업 솔트룩스의 이경일 대표는 “우리가 보기에 예술은 창의적일 수 있지만, 정말 창의적이어서 ‘이 사람 아니면 안 된다’ 하는 건 전체 예술 직군의 10%밖에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나머지 90%는 반복노동이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창의력보다 규칙적으로 기존의 것을 생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문화 콘텐츠라면 AI가 인간보다 더 빨리 배우고 제작까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10년 내 새로운 일자리 찾아나서야”
그렇다면, AI에 밀려 인간들이 실제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상황이 발생할까. 응답자들은 대체로 “새 직업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AI 대체 직군 종사자들이 향후 10년 내에 새로운 일자리를 탐색해야 할 가능성에 대해 응답자의 51.4%는 ‘대체로 높다’고 답했다. ‘매우 높다’는 응답도 25.7%에 달했다. 10명 중 7명이 대체 가능성이 높은 직군 종사자들이 새로운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본 것이다.
AI의 도입으로 어느 세대가 가장 큰 타격을 볼 것인지를 두고는 10대(27.1%)와 20대(22.9%)가 높게 나타났다. 현재도 일자리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일자리를 놓고 AI와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말이다. 기술 진보를 인정하면서도 대체 가능성에 대해서는 ‘지금이 아닌 다음 세대’로 생각하는 경향으로도 풀이된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지금의 20대는 힘들 수 있지만 결국 적응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가장 힘든 건 향후 20년을 놓고 볼 때 지금의 30대”라며 “앞으로 20년 넘게 돈을 벌어야 하는 30대가 ‘낀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AI 지식으로 무장한 어린이와 은퇴를 앞두고 있는 장년층 사이에서 일자리 위협을 받아야 하는 ‘삼중고’가 30대를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전창록 경북경제진흥원장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창조력은 편집의 배열, 순서를 바꾸는 수준인 경우가 많다”면서 “창조라는 게 무에서 100% 유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는 관점이라고 본다면 나이가 많은 사람이 유리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언가를 관찰하고 발명할 수 있고, 질문을 던지는 역량이 없는 사람들이 가장 취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자리 수’와 ‘일의 양’, 구분해 생각해야”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어느 정도로 대체할지에 대해선 ‘30∼40%’라는 응답자(25.7%)가 가장 많았다. 아울러 ‘20∼30%’라고 본 응답자(20.1%)와 ‘50∼60%’라고 본 응답자(15.7%)가 뒤를 이었다. 전체 응답자 중 32%는 전체 일자리 중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응답자들은 일자리를 ‘일자리의 수’로 보는지 또는 ‘일의 양’으로 보는지에 따라 엇갈린 의견을 갖고 있었다. 일례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들 사이에서는 “AI 자체가 노동 효율화를 위해 개발된 것”, “자동화의 영향으로 수작업이 줄어든다”며 일의 ‘양’이 줄어들 것이라고 본 시각은 물론, “기계가 사람 업무를 대체하고 있어 일자리 감소는 시간문제”라며 일자리의 ‘수’를 중심으로 생각한 답변도 있었다.
전 원장은 이를 두고 “일자리를 어떻게 규정하는지의 문제”라고 했다. 그는 “일자리 총량이라는 게 일의 양인지, 일자리의 숫자인지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의 양은 줄어들 것이고, 일자리 숫자가 줄어든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AI와 로봇으로 인해 고용의 형태도 달라질 것으로 전망됐다. 응답자의 72.9%는 미래 일자리에 대해 “긱 이코노미가 확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긱 이코노미란 임시, 비정규직, 시간제 형태로 일하는 노동자가 늘어나는 상황을 뜻한다. 반대로 고용 형태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14.3%에 그쳤다.
◆“빈부격차 더 커질 것”
응답자의 82.9%는 빈부격차가 지금보다 더욱 벌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줄어들 것이라는 반응은 5.7%에 불과했다. 학계와 AI업계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국회 미래연구원 여영준 박사는 “임시·일용직 등 불안정한 고용계층일수록 반복적 업무를 수행하는데, 코로나19의 영향이 이들 계층에 직접적으로 충격을 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로봇을 가진 자본가의 이윤이 급증하고 노동자의 소득은 감소하는 소득불평등이 심화할 것”이라면서 “기술에서 동떨어진 사람들의 불평등 문제가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확인이 됐고, 그것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경일 대표도 “소득 격차가 커질수록 하위 10%의 불행감과 박탈감은 더 크게 증가할 것”이라며 “이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으로서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응답자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의식한 듯 기본소득 도입 필요성에 대해 77.2%가 매우 또는 대체로 동의한다고 답했다. 정부의 취업정책에 대해서도 “일자리 유연성을 키우고, 대신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는 응답(81.4%)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법무법인 케이앤파트너스 전별 변호사(노동법 박사)는 “가장 시급하게 사회안전망의 보호가 필요한 건 실업 문제”라면서 “일자리가 많이 사라지게 될 것이고, 대체하는 것들이 현실적으로 안 보이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기본소득에 앞서 선별적인 복지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최현수 연구위원은 “기본소득은 기본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지만 중간 단계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기본소득을 전 생애에 걸쳐 받지 않을 수도 있다. 특정 몇 년에 걸쳐서 받거나 특정 세대가 됐을 때, 중장년층이 되었을 때 받고 노후를 설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영준 박사는 “노동시장 진입과 역량 축적, 평생 학습을 뒷받침하는 (사회안전망) 설계가 이뤄진다면 디지털 전환에 따른 충격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건 사회보장시스템 강화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그 공감대가 형성됐으니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우리에게 놓인 과제”라고 했다.
특별기획취재팀=안용성·윤지로·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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