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양보’하지 못하도록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집요하게 방해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볼턴 전 보좌관의 노력 때문인지 ‘하노이 담판’은 결렬됐고 이후 북·미관계는 얼어붙었다.
23일(현지시간) 출간된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 따르면 볼턴 전 보좌관은 하노이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 국무부 협상팀이 합의에 대한 열의로 통제불능 상태에 빠졌다고 판단해 개인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공략할 방법을 검토했다. 1986년 소련과의 회담장을 박차고 나온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의 영상을 준비해 트럼프 대통령의 머리에 ‘결렬 옵션’을 입력시켰고, 국무부 협상팀이 마련한 초안을 막으려 마이크 펜스 부통령 등에 급히 연락해 지원군을 확보했다.
하노이회담을 앞두고 백악관 상황실에서 열린 첫 준비회의에서는 미국의 전임 대통령들이 대북성과를 주장하지만 북한은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에도 여전히 미국을 속이고 있다는 내용의 영상을 틀었다. 볼턴 전 보좌관은 “하노이에서의 실수를 막기 위해서”라며 “미국이 재앙적 양보나 타협 없이 하노이회담을 지나가게 하는 데 역점을 뒀다”고 적었다.
하노이회담 결렬 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진전이 있었다는 ‘하노이성명’을 내고 싶어했다고 그는 주장했다. 김 위원장이 이를 주장하면서 “북·미 정상 간 장벽이 느껴진다”고 말했을 때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감정에 호소하는 김 위원장의 작전이 먹혀들까 걱정했다고 설명했다.
회고록에는 지난해 7월 한·일 갈등이 첨예할 때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도 담겼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한·일 양쪽에서 요청이 있으면 역할을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문 대통령에게 직접 “한·일관계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볼턴 전 보좌관은 당시 한·일 갈등 국면에 양국을 차례로 방문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문 대통령에게 (한·일)분쟁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 문 대통령에게 그런 뜻을 전달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볼턴 전 보좌관은 회고록에서 문 대통령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를 향해서도 ‘조현병적(schizophrenic)’이라는 막말을 퍼부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당시 미국 측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문구를 공동성명에 담으려 했으나 북한과 이견을 좁히지 못해 무위에 그친 비화도 공개됐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sisleyj@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