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 상, 하 전 2권- 삼한갑족 익명의 독립운동가 이석영/박정선/푸른사상/각 2만원
조선시대 삼한갑족은 명문거족의 가문이다. 세도를 누리다 이름없이 사라져간 명문가는 많지만 이 시대에 존경받을 만한 가문은 그리 흔치 않다. 오늘날 이석영 집안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중견 작가 박정선이 이석영의 동생인 우당 이회영의 독립운동을 그린 소설 ‘백 년 동안의 침묵’에 이어, 이번에는 이석영에게 초점을 맞추어 그들 형제애와 조국애를 드러낸다.
이석영은 우당 이회영의 형님이다. 석영은 구한말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의 양자로 출계했다. 경술국치의 한일합방이 체결되자 석영, 회영 형제를 비롯한 집안의 가솔들은 일본공사관의 회유정책을 뿌리치고 만주로 갔다.
두 사람은 독립군을 양성할 신흥무관학교를 만주 서간도에 세우기 위해 전 재산을 처분하여 6형제와 함께 망명을 결행했다. 만주 독립운동의 토대가 된 그들 형제의 망명은 한인들의 자치 조직을 세워 독립군 사관생도를 양성한다는 꿈을 실현했다. 지금도 유명한 청산리전투, 봉오동전투 등 숱한 항일 무장투쟁의 전위부대를 만든 뿌리는 이를 형제가 세운 신흥무관학교였다. 의열단, 다물단, 흑색공포단 등을 조직하여 일제 밀정을 처단하고, 수많은 애국지사들에게 독립운동에 대한 용기와 희망의 불을 지폈다.
이석영은 한일병합 이전부터 아우 이회영의 항일운동을 자본으로 뒷받침했다. 그러나 이석영의 말년은 불행했다. 이만 석 재산을 모두 독립운동에 바치고 말년에는 굶어죽는 비극을 맞이했다. 지금은 그의 유해조차 찾을 수 없다.
조국 해방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질수록 더욱 불타올랐던 노 혁명가가 끝내 맞이한 비참한 죽음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작가 박정선은 “유골마저도 망명의 땅 허공에 흩어버린 이석영, 감히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그의 순국은 너무 비참했다”면서 “그러나 그를 위해 아무도 울어주는 이 없었고, 기억해주는 이 없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비극이 있지만 이보다 더 비극적일 수는 없다”고 애석해했다.
박 작가는 “이석영 집안이야말로 독립운동의 본질을 보여준다. 내가 누구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고, 내가 무엇을 어떻게 했다는 것도 말하지 않았다”면서 “현충원에는 수많은 애국자들이 잠들어 있지만 그의 묘는 없다. 다만 서울 현충원 현충탑 지하에 무후선열(無後先烈, 대를 이을 자손이 없는 선열) 영전에 기록으로 남아 있을 뿐”이라고 했다.
박태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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