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제2 주식’ 밀 자급률 1%
2020년 식량 안보 예산 고작 34억
사후약방문 대책 더이상 안돼
“국제사회의 다양한 이동제한 조치로 국내외에서 식량의 생산, 가공, 유통 등에 즉각적이고 심각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식량위기론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3월26일 코로나 19 확산에 대응하고자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취둥위 사무총장이 식량위기 가능성을 공식화했다. 곧이어 5일 뒤 세계보건기구(WHO),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도 식량의 가용성과 이동성의 불확실성 증대가 연쇄적 수출제한으로 이어져 글로벌 식량난을 야기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로 통상 분야에서 등장하는 국경봉쇄라는 돌발변수 때문이다. 러시아는 지난 3월 모든 곡물 수출을 멈췄고, 우크라이나는 밀 수출에 쿼터를 적용했다. 코로나19 이후 여러 국가에서 나타난 식료품 사재기 현상은 먹거리에 대한 국민 불안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준다.
현재 세계 곡물의 생산·공급·소비·교역량은 안정적인 수준이다. 그래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위기란 변장의 달인’이라 코앞에 올 때까지 모를 수 있다고 했던가. 유통 통로, 즉 밸류 체인(Value Chain)에 문제가 언제든 생길 수 있다. 중장기적인 식량안보 유지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달 초 영상으로 진행된 FAO 아시아·태평양지역 총회에서 회원국들이 코로나19로부터 농식품 분야의 회복력 제고 방안을 주요 의제로 설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제 곡물 관련 실수요 업체, 학계, 정책 담당자 등 관련 전문가들이 향후 10년 이내에 2007∼2008년과 같은 국제 곡물시장 위기가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는 한국농촌연구소의 조사 결과도 있다.
우리나라는 FAO의 식량위기 위험요소 4가지 중 물류상 문제에 의한 식량위기, 식량 자급률이 낮은 국가의 식량위기와 맞닥뜨릴 수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45.8%로 10년 전인 2009년 56.2%보다 10.4%포인트 하락했다. 그나마 쌀 자급률이 92.1%로 높아서다. 곡물 자급률은 형편없어서 같은 기간 29.6%에서 21.0%로 추락했다.
우리 국민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곡물은 쌀과 밀이다. 쌀은 자급률이 높고 소비량도 감소 추세여서 문제가 없다. 지난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9.2㎏으로 60㎏ 아래로 처음 내려갔다. 1970년 136.4㎏을 정점으로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그다음으로 많이 먹는 곡물은 밀인데 식생활이 서구화하면서 지난해 1인당 연간 밀 소비량이 33.0㎏까지로 늘었다. ‘제2 국민주식’인 밀은 지난해 자급률이 고작 0.8%로 2016년의 1.8%에서 오히려 곤두박질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22년까지 밀 자급률 목표 9.9% 달성이 요원해 보인다.
그런데도 올해 식량 식량안보 예산이 고작 34억원이라니 말문이 막힌다. 근시안적이고 사후약방문 격 대책으로는 식량위기에 잘 대처할 수 없다. 내년도 식량안보 예산도 고작 176억원에 불과하다. 밀 자급 기반 확보에 초점을 맞춘 것은 정확한 판단이다.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의 의지가 작용했다는 전언이다. 국내 시장에 외국산 밀은 넘쳐나고 우리 밀은 소비가 안 된다. 외국산은 국수, 빵, 과자 등 용도에 따라 나뉘지만 우리 밀은 뒤죽박죽인 모양이다. 품종이 단일하지 않고 재배방법도 친환경 농법, 비료 사용 등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다. 품종과 재배방법을 통일시켜 품질을 유지하는 작업에 힘을 모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수확한 밀이 안 팔리면 정부가 전량 수매하는 식으로 농가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농식품부가 국내 재배 적합 우수 밀 품종 보급을 위해 연구기관·대학이 참여하는 적응성 시험을 추진하고, 그 연구 결과를 토대로 실증재배 등을 한다고 하니 귀추가 주목된다. 쌀 못지않게 밀의 비축과 해외 조달에도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아울러 밀 종자 지원과 생산단지 조성, 계약재배 등에 사업비가 확대 투입되도록 청와대, 정치권, 예산 당국이 많은 관심을 가지기를 당부한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상기후까지 거세지는 상황에서는 언제든 식량 보호주의가 발로할 수 있으니 말이다.
박찬준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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