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8000명 참가 총리실로 행진
당국, 안보 위협 ‘긴급 포고령’ 선포
시위 주최측 포고령 발효에도 집회
태국 정부가 왕실 개혁 및 총리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대를 상대로 ‘재갈 물리기’에 나섰다.
15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태국 정부는 ‘긴급 포고령’(emergency decree)을 통해 △5인 이상 집회 금지 △국가 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보도 또는 온라인 메시지 전송 금지 △총리실 등 당국이 지정한 장소 접근 금지 등을 명령했다.
경찰은 국영 TV를 통해 “여러 집단의 사람들이 방콕 시내에서 불법 집회를 조직, 선동, 실행해 왕실 차량 행렬을 방해하고 국가 안보에 영향을 주는 심각한 행위를 저질렀다”며 “이런 상황을 효과적으로 종식하고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긴급 조처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포고령은 이날 새벽 4시부로 발효됐다.
이번 조치는 전날 당국 추산 1만8000명에 달하는 집회 참석자들이 차벽을 뚫고 총리실로 행진하면서 왕실 차량 행렬과 대치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일부 시위대는 수티다 왕비가 탄 차량을 호위하는 경찰을 향해 “물러가라”고 외치며 이번 반정부 시위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를 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긴급 포고령 발효 이후 방콕 경찰청은 6개 중대를 동원해 총리실 바깥 밤샘 집회 참석자들을 해산시키고 이 중 22명을 체포했다고 일간 방콕포스트가 보도했다. 아논 남빠 변호사 등 시위 지도부 4명도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이 주도하는 반정부 시위는 올해 2월 헌법재판소가 퓨처포워드당(FFP) 해산을 결정하면서 촉발됐다.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지난해 3월 총선에서 의회 제3당으로 발돋움한 FFP는 그간 헌법 개정을 통한 민주화를 주장해 왔다. 2014년 군부 쿠데타 이후 캄보디아로 망명했던 저명한 민주화 운동가 완찰레암 삿삭싯이 지난 6월 납치·실종되면서 시위는 더욱 확산했다.
특히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이 코로나19를 피하겠다며 독일 휴양지에서 외유를 즐기고, 세계적 스포츠음료 ‘레드불’ 공동 창업주 손자가 저지른 뺑소니 사건을 권력층이 비호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끼얹었다. 시위대는 쿠데타로 권좌에 오른 쁘라윳 짠오차 총리의 퇴진과 입헌군주제 국가인 태국에서는 금기시된 ‘군주제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반정부 단체 측은 정부의 집회 금지 방침에도 이날 오후 방콕 상업 중심지구인 랏차쁘라송 사거리에서 집회를 강행했다. 오후 4시쯤 도로를 점령한 시위대는 “쁘라윳은 퇴진하라”, “체포된 동료들을 석방하라”고 외쳤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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