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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s "차별"…'백신여권', 또 다른 불평등 부를까? [심층기획]

입력 : 2021-01-05 06:00:00 수정 : 2021-01-05 16:4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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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접종·발열 기록 등 담아 ‘안전입증’
韓·美·日 등 WEF 25개국 앱 개발 동참
항공업계 도입 임박… 濠항공 등 적용방침
이스라엘, 접종자 이동제한 면제 추진도
2021년 백신 생산량 절반 이상 美·加 등 선점
“저소득국가 등 전세계 보급 1∼2년 걸려”
개인정보 보호·강제접종 등도 쟁점 부상
지난해 12월27일(현지시간) 프랑스 동부 디종의 한 노인요양시설에서 92세 노인이 화이자·바이오엔테크의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는 모습. 이날 프랑스 등 상당수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021년 새해가 밝으면서 세계 각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확보와 접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미 국민 10명 중 1명 이상이 백신 접종을 마쳤다. 하지만 안전성 등을 이유로 백신 확보에 뒤늦게 나선 우리나라는 물론 예산 부족 탓에 아예 백신 확보 전쟁에 뛰어들지 못한 나라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일명 ‘백신 여권’(vaccine passport) 도입 논의가 한창이다. 여권 없이 해외를 오갈 수 없듯, 코로나19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의 이동과 다중이용시설 출입을 제한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는 일부 국가나 지역에서 외부 여행객을 상대로 실시 중인 ‘코로나19 문진’에 백신 접종 여부를 추가해 발전시킨 형태다. 하지만 백신 접종 의무화, 국가별 백신 접종 격차 등과 맞물리면서 시행 전부터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백신 여권, 시작은 ‘해외여행 활성화’ 등 경제 재건… 한국도 관여

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코로나19 관련 경험 등을 담은 ‘건강인증서’ 등이 백신 출시와 맞물려 백신 접종 여부를 추가한 ‘백신 여권’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특히 코로나19 발병 이후 누적 환자가 2000만명을 넘어서고 사망자는 35만명에 달하는 최대 감염국 미국과 최근 확진자가 급증한 유럽연합(EU) 등에서 백신 여권 논의가 한창이다.

 

CNN방송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사람들의 이동이 제한되면서 침체됐던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소개했다. 백신 접종자가 해외여행에 나서거나 영화관, 콘서트장, 스포츠 경기장 등에 입장할 때 접종 사실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이나 카드 형태에 코로나19 백신 접종 사실 등을 담은 백신 여권 개발은 항공업계가 특히 적극적이다. CNBC에 따르면 지난해 코로나19로 항공 수요가 급감하면서 미 항공사들의 순손실은 350억달러(약 38조원)를 넘을 전망이다. 부채도 670억달러 급증한 1720억달러(약 187조원)로 집계됐다.

스위스 제네바의 비영리단체 ‘커먼프로젝트’(CP)는 세계경제포럼(WEF)과 백신 여권인 ‘커먼패스’ 앱 개발에 나섰다. 이 앱은 코로나19 검사 결과, 병원에서 발급한 백신 접종 증명서 등을 담을 수 있다. 커먼패스 앱은 항공기는 물론 일반 건물과 학교 등에서도 활용이 가능하다. 민감한 개인정보를 최소화한 커먼패스 앱에는 의료증명서나 통행증이 QR코드 형태로 발급된다.

CP는 지난해 10월 캐세이퍼시픽과 유나이티드항공의 영국∼미국 노선에서 미 세관국경보호국(CBP),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함께 커먼패스 시범사업을 했다. 유럽과 미주,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등에서도 비슷한 시험을 시도했다. 미국, 영국은 물론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WEF 25개국이 커먼패스 앱 개발 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 중이다.

CP 측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경제 재건에 나선 각국은 국경을 다시 여는 방법과 구성원들의 건강을 보호하면서 여행 등을 재개할 방법을 찾는 데 혈안이 돼 있다”며 “국경 제한과 자가격리, 경제 봉쇄의 완화에 있어 각 국가와 산업계는 개인의 건강상태를 보여주는 믿을 만한 인증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 항공사가 모인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도 전자 백신 여권인 ‘트래블 패스’를 1분기 안에 출시할 계획이다. 스마트폰 앱 형태인 트래블 패스도 여행객들이 접종해야 할 백신이 무엇인지, 어떤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등을 알려준다.

알렉산드르 주니악 IATA 사무총장은 “코로나19 검사는 국경을 안전하게 다시 열고 사람들을 다시 연결하는 즉각적인 솔루션이고, 이는 백신 접종 요구로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며 “두 경우 모두 코로나19 검사나 백신 정보를 관리하기 위한 보안시스템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트래블 패스는 여행자와 정부 모두가 신뢰할 수 있도록 데이터 보안, 편의성 및 검증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고 덧붙였다.

트래블 패스는 아울러 항공기 탑승 과정이나 세관 등에서 승객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을 추구한다. IATA는 “승객의 70%가 항공사 및 보안 직원 및 공무원에게 여권이나 탑승권을 건네는 것을 우려했고, 여행자의 85%는 공항 전체의 무접촉 처리를 더 안전하게 느끼고 있다”며 “여행자의 44%가 무접촉 처리를 위한 개인정보 공유에 동의했는데, 이는 지난해 6월의 30%에 비해 증가한 수치”라고 소개했다.

대형 정보기술(IT) 기업들도 가세했다. IBM이 개발한 ‘디지털 헬스 패스’ 앱은 기업이나 콘서트장·회의장·경기장 등 입장을 위해 필요한 발열검사나 코로나19 검사, 백신 접종 기록 등을 ‘맞춤형’으로 설정할 수 있다.

 

◆‘차별’을 내포한 백신 여권… 파우치 “실행 가능성 낮다”

항공업계 등은 백신 여권 도입이 임박했다. 호주 콴타스항공은 국제선 탑승객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고, 백신 접종 속도가 가장 빠른 이스라엘은 접종자에게 이동제한 조치를 면책하는 ‘그린 여권’을 발급할 계획이다.

하지만 보편적 활용에는 부정적 의견이 많다. 백신 여권 도입 후 비접종자 처우에서 차별 등 인권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서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거부감은 줄었지만 여전히 독감 등 다른 백신보다 거부감이 큰 상황에서 자칫 강제 접종 논란으로 번질 수도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지 않겠다”고 했다. 국가와 지역마다 백신 접종률이 천지차이라는 점, 앱과 관련해 개인정보 보호 문제 등도 난제로 꼽힌다.

NYT는 “백신 여권이 사업을 재개하고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여행과 직장에서 사람들을 부당하게 배제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1887년 뉴욕의 일부 학교가 학생들의 등교 조건으로 천연두 예방접종 증명서 제출을 요구해 논란이 됐다”며 “1960년대에는 황열병 유행지인 서아프리카 여행자에게 황열병 예방접종 증명서인 ‘황색카드’를 발행했다”고 소개했다. 황색카드는 세계보건기구(WHO)가 발급하는 일종의 의료여권으로, 지금도 일부 국가는 이를 통해 풍진이나 콜레라 등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한 뒤 입국을 허가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여러 쟁점에 대한 합의가 필요해 보편화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고 진단했다.

국가 간 ‘백신 격차’도 크다.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생산되는 백신의 절반 이상은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들이 이미 선주문을 마쳤다”며 “캐나다는 인구의 5배, 미국은 인구의 1.5배가 접종할 백신 구매 계약을 했다”고 소개했다. 저소득 국가는 백신 확보와 접종이 더디거나 쉽지 않아 백신 여권 대상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백신 접종 초기 단계라서 백신 여권 논의가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글로벌 컨설팅사인 맥킨지앤드컴퍼니는 연말까지 전 세계 20억명이 화이자·모더나·아스트라제네카 3개사의 백신 접종을 마칠 전망이고, 3상시험 중인 다른 10여개 백신까지 더하면 78억 세계 인구의 절반가량인 42억명이 올해 안에 접종을 마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IATA는 코로나19 백신 전 세계 보급에 최소 1년에서 2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 “‘광범위한 접종’이 완료된 후라면 일부 지역에서 비접종자에게 백신 접종을 강제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법적·윤리적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뉴욕 라디오방송인 WCBS와 인터뷰에서 백신 여권에 대해 “실행 가능할 것 같지 않다”며 “사회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서 이를 도입하려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백신을 접종하면 이 전염병을 없애고 그냥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밝혔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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