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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 병실 찾아 단속 피한 태국 여성에게 “성매매 했느냐” 물은 경찰…인권위 “인권 침해”

입력 : 2021-04-12 15:09:12 수정 : 2021-04-12 17: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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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여성 여권 빼앗긴 채 성매매 정황 포착
인권위 “인신매매 피해 식별조치 선행 필요”
서울 중구 인권위 모습. 연합뉴스

경찰이 단속을 피하는 과정에서 다친 성매매 이주여성을 사고 당일 다인실 병실에서 조사한 것은 ‘기본권 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12일 “경찰이 부상을 당해 육체적·정신적으로 피폐해 있던 피해자를 상대로 다수가 있는 입원실에서 무리하게 피의자 신문을 하고 신뢰관계인의 동석, 영사기관원 접견·교통에 대한 권리고지 절차도 준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조사를 진행한 경찰관 대해 관할 경찰서장이 서면경고 조치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태국 여성 A씨는 지난해 2월8일 0시쯤 경찰의 성매매 단속을 피해기 위해 오피스텔 4층 높이에서 뛰어내려 부상을 입었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후 B경찰서의 수사관은 같은 날 오전 11시쯤 A씨가 입원한 6인실 병실을 방문해 성매매와 관련한 피의자 심문을 약 1시간 30분간 진행했다.

인권위는 “여러 명이 함께 입원한 공개된 병실에서 피해자의 성매매 혐의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인권침해 행위”라며 “한국 내 지지기반이 약한 이주여성을 조사하면서 신뢰관계인을 동석시키지 않고 영사기관원과의 접견권을 고지하지 않은 것도 신체의 자유 침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조사 과정에서 태국 출신 피해자가 현지 에이전시로부터 허위 근로정보를 받고 국내로 입국했으며 여권을 빼앗긴 채 성매매 일을 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에 경찰 측은 “피해자가 조사 중에 인신매매 피해자임을 주장한 사실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A씨가 한국 사법제도에 대한 접근성이 낮고, 성착취 피해에 노출될 위험이 높은 집단에 속하므로 인신매매 피해 식별조치를 선행할 필요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다만 지금까지 인신매매 피해자 식별절차에 관한 구속력 있는 제도가 법률에 반영돼 있지 않은 점을 고려해 경찰청장에게 인신매매 피해자에 대한 식별절차와 보호조치 관련 규정과 매뉴얼을 마련하고, 한국 내 사회적 지지기반이 취약한 계층을 수사할 때 신뢰관계인이 동석하도록 제도를 정비할 것을 권고했다.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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