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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 수습기간 ‘족쇄’… 야근에 상담 뺑뺑이까지 강요 [심층기획 - 변시 합격자 연수 제한 논란]

, 세계뉴스룸

입력 : 2021-05-12 11:18:00 수정 : 2021-05-12 1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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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청년 변호사 삼키는 ‘블랙펌’

최소 6개월간의 실무 수습 없이는
법률사무소 개소·로펌 구성원 안돼
연수 신청 탈락 땐 자력으로 구해야

로펌선 수습 변호사의 간절함 악용
최저임금 수준 월급주며 노동 착취
업무 지시하면서 인격 모독 발언도

수요보다 공급 초과에 ‘악습’ 되풀이
내실있는 실무 경험 쌓게 제한 해제
수습도 법정에 설수 있도록 해줘야

“변호사님 멍청해요?”

8회 변호사시험 합격자인 김지훈(가명)씨는 2019년 실무연수 때 들은 막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갓 로스쿨을 졸업한 김씨에게 선배 변호사들은 방법도 알려주지 않은 채 서면 작성을 떠넘겼다. 혼자 일일이 작성법을 찾아가며 이틀 만에 서면을 완성했지만 돌아온 건 조언이 아닌 무시와 경멸이었다. “원래 어릴 때부터 글을 못 썼어요?” “이렇게 일처리가 늦어서 일하겠어요?” “써놓은 말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김씨는 “인격모독이 심했다”며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 한 달 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같은 해 시험에 합격한 이정우(가명)씨도 연수 과정에서 오싹한 경험을 했다. ‘생초보’인 이씨가 쓴 서면을 대표 변호사가 확인도 하지 않고 제출한 것이다. 선배의 지시로 이씨가 작성한 고소장은 윗선의 검토 없이 그대로 경찰에 접수됐다.

고소장을 받아든 경찰은 도저히 안 되겠는지 의뢰인에게 “고소장이 왜 이 모양이냐”고 전화해 타박했다. 이를 전해 들은 대표 변호사는 오히려 이씨를 혼냈다. 이씨와 함께 실무연수를 했던 A씨는 “본인이 보지도 않고 제출했으면서 혼내는 건 불합리하다고 느꼈다”며 “저희(수습 변호사)도 저희지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의뢰인은 무슨 잘못이냐”고 반문했다.

변호사시험 합격자들이 변호사로 일하려면 법무법인이나 법률사무소, 대한변호사협회 등 지정된 법률사무종사기관에서 최소 6개월의 수습기간을 거쳐야 한다. 수습기간 없이는 법률사무소를 개설하거나 로펌 구성원이 될 수 없다. 수습처를 구하는 기간만큼은 철저히 ‘을’로 지내야 하는 셈이다.

지난해까진 로펌 등에 취직하지 못하더라도 대한변호사협회가 남은 합격자들을 모두 수용해줬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대한변협이 연수 인원을 200명으로 대폭 감축하면서, 올해 대한변협 연수를 신청했다 떨어진 300여명은 꼼짝없이 자력으로 수습처를 구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문제는 이들이 주로 가게 될 곳에 ‘블랙펌’(악덕 로펌·법률사무소)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블랙펌은 수습 변호사들의 간절함을 악용해 이들의 노동력을 싼값에 착취하는 일종의 ‘악덕업주’다. 그간 블랙펌 문제는 변호사업계에서만 언급될 뿐 외부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변호사의 사회적 지위가 높다 보니 사각지대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과 무관치 않다.

◆야근·주말 출근은 기본, 상담 뺑뺑이까지… 블랙펌의 현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한변협은 200명 제한을 둔 실무연수를 지난 7일 시작했다. 이번 실무연수엔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545명의 10회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지원했는데, 이 중 345명은 추첨에서 떨어졌다. 345명에겐 한 가지 선택지만 남았다. ‘어떻게든 수습처를 찾을 것’. 6개월 수습 기간을 채우지 못하면 정상적인 변호사 활동을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급한 이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을 받아줄 수습처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블랙펌도 감수하고 들어가게 된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올해는 더 많은 변시 합격자가 실무연수 길이 막혀 블랙펌으로 몰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블랙펌의 정의가 명확히 있는 건 아니다. 청년 변호사들이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곳은 모두 블랙펌으로 분류된다. 주로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으로 주말 출근과 야근을 밥 먹듯이 시키는 곳, 의뢰인 상담·서면 작성을 전담시키는 곳, 인격모독성 발언을 하는 곳 등이 꼽힌다.

수습 변호사에게 야근과 주말 출근을 강요하는 블랙펌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수습 변호사가 30건가량의 사건을 맡으며 서면을 떠맡아 쓰는 식이다. 주로 이혼소송이나 재개발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로펌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데, 이혼사건의 경우 수습 변호사가 80건까지 사건을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 공동대표인 박은선 변호사는 “어떤 수습 변호사는 본인이 30건을 담당하는데 너무 무섭다고 했다”며 “본인이 서면을 다 작성하고, 이게 그대로 법정에 나가는데 만약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책임을 지냐며 두려워했다”고 전했다. 블랙펌에서 수습 생활을 했던 한 변호사도 “야간에 상담을 많이 시킨 기억이 난다”며 “‘이곳은 나를 소모품으로 생각하는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고 했다.

수습 변호사에게 소위 ‘상담 뺑뺑이’를 시키는 곳도 블랙펌이다. ‘상담 뺑뺑이’란 의뢰인 상담을 수습 변호사가 전담하는 것을 뜻한다. 상담 때는 의뢰인 질문에 즉각 대답해야 해 수습 변호사가 대응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인데, 제대로 된 교육도 없이 귀찮고 어려운 일을 시키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특히 블로그 등 인터넷 광고로 성장한 로펌들에서 상대적으로 많다. 저가에 사건을 수임하다 보니 상담 손님이 많은 게 특징이다. 의뢰인들은 실력과 경험이 있는 ‘정식 변호사’와 상담하길 원하는데, 변호사들은 재판 참석 등 여러 사정으로 사무실을 비우는 일이 잦다. 결국 저녁과 주말 등 가리지 않고 상담할 수 있는 건 수습 변호사뿐이고, 수습 변호사는 ‘배운다’는 느낌 없이 기계적으로 상담업무를 도맡게 된다.

이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블랙펌이 존재한다. 한 끼에 먹을 수 있는 식비를 터무니없이 낮게 잡는 경우, 급여를 연체하는 경우, 4대 보험을 안 내주는 경우 등 돈 문제를 일으키는 블랙펌도 많다. 한 변호사는 “지인인 변호사가 점심 때 1만5000원짜리 음식을 시켜먹었는데, 나중에 그걸 알게 된 대표가 엄청 뭐라 했다고 한다”며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블랙펌이 늘면서 수습 변호사들도 블랙펌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피하려 애쓴 지 오래다. 변호사들만 이용 가능한 커뮤니티 내엔 알림게시판이 있는데, 여기서 비추천을 많이 받는 곳은 대부분 블랙펌이다. 매년 1월에 변호사 모집 공고를 올리고, 몇 달 간격으로 계속 수습 공고를 올리는 곳도 블랙펌으로 분류된다.

◆공급 초과하는 수요… 블랙펌이 생기는 이유

블랙펌이 생기는 근본적 원인은 수습기간을 채우고자 하는 수습 변호사들이 실무교육을 하고자 하는 법률사무종사기관보다 많기 때문이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서, 수요가 많은 쪽이 굽히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은선 변호사는 “어쨌든 변호사업계에서 일할 것이기 때문에 블랙펌이라고 해도 견디는 것”이라며 “이 기간만 견디면 앞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마음, 다른 길이 없다는 마음으로 참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공급자 입장에서 수습 변호사를 제대로 가르칠 유인이 없는 것도 문제다. 로펌 입장에서는 최저임금 수준이긴 하지만 월급을 주면서 변호사를 가르쳐야 하다 보니 아직 제 몫을 하지 못하는 수습 변호사에게 자본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 중·소형 로펌의 경우 잘 가르쳐놓은 수습 변호사가 대형 로펌으로 이직하는 최악의 경우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연덕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로펌에서 가르치고 나면 변호사들이 더 좋은 곳으로 가니까 실무수습부터 제대로 안 가르치는 것”이라며 “대형 로펌들은 ‘일 잘한다’고 소문나면 다 데려간다”고 했다. 정 교수는 “그냥 빼가는 게 아니라 회사의 노하우를 다 가지고 나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습 변호사도 법정 설 수 있도록 해야”

블랙펌이 줄어들고, 내실 있는 실무수습이 진행되기 위해선 수습 변호사에게 둔 여러 제한을 풀어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수습 변호사들은 법정에 설 수 없도록 돼 있는데, 이런 제한이 노동착취 등을 하는 블랙펌을 계속 양산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법정에 세울 수 없으니 사무실에 앉아 서면 작성이나 의뢰인 상담 등 단순 업무를 반복적으로 시키는 걸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6개월 실무수습 기간엔 법정에 변호사로 단독으로 서지 못한다”며 “국선변호인에 한해서는 허용해줘도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국선 변론으로 20개 정도의 사건을 6개월 동안 맡아보면 구치소도 가보고 변론도 하는 등 실무 경험을 쌓는 데 충분한 도움이 된다”며 “이처럼 실제 송무 경험을 늘릴 수 있도록 (정부 등이) 여러 묘수를 생각해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주영 변호사(법무법인 한누리) 역시 “법정에 기존 변호사랑 같이 설 수 있도록 하는 등 수습 변호사들이 실무를 접할 수 있도록 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희진·이지안·이정한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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