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패권을 노리는 국가라면 적어도 한번쯤은 고려하는 것이 항공모함 건조다. 하지만 함재기 구입 등에 수조 원이 넘는 거액이 필요해 실제로 항모를 만든 나라는 많지 않다.
이와 관련해 전통적 방식의 항모가 아닌, 무인기를 운용하는 ‘드론 항모’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전투기보다 훨씬 저렴하고 발전 가능성이 큰 드론을 다수 운용하면 해상전투에서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2020년대 이후 전장 환경이 무인화, 소형화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드론 항모’에 대한 관심을 높인다. 세계 각국의 연안 방어능력이 강화되면서 항모를 비롯한 대형 함정이 섣불리 해안에 접근하기가 어려워지는 상황도 이를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이유는 다르지만…주목받는 ‘드론 항모’
2018년부터 강습상륙함 아나돌루함(2만7000t급)을 건조해온 터키는 당초 F-35B 수직이착륙 스텔스 전투기를 함재기로 탑재할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 영국 퀸 엘리자베스 항모처럼 함수에 스키점프대도 만들었다.
하지만 미국은 터키가 러시아산 S-400 대공방어체계를 도입하자 보복 차원에서 F-35 프로그램에서 터키를 제외했다. 대안으로는 프랑스 라팔M이나 러시아 미그-29K가 있었지만 사출장치가 없고, 크기도 작은 아나돌루함에는 탑재할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해 터키는 지난해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아르메니아 전차를 다수 격파해 성능을 입증한 자국산 무인공격기 바이락타르 TB-2를 개조해 아나돌루함에 탑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014년부터 터키군에 배치된 TB-2는 터키산 대전차 미사일을 장착한다. 아제르바이잔과 우크라이나, 카타르 외에 폴란드가 최근 24대 도입을 결정했다.
터키는 아나돌루함에 TB-2 30~50대가 이착륙을 할 수 있고, 이 가운데 10대는 동시에 작전을 펼치는 것도 가능하다고 전망한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견제에 총력을 기울이는 미국은 비행갑판과 155㎜ 함포, 미사일 수직발사대를 갖춘 ‘미니 드론 항모’를 검토중이다. 미국은 앞서 2013년 5월 핵항모에서 X-47B 무인전투기를 띄운 경험이 있다.
중국과 무력충돌이 벌어지면, 미 해군 핵항모와 강습상륙함이 중국 공격의 선봉에 서게 된다.
F/A-18과 F-35의 전투행동반경은 800~1100㎞. 반면 ‘항모 킬러’로 불리는 중국의 DF-21 대함 탄도미사일은 사거리가 최대 3000㎞에 달한다.
DF-21이 얼마나 정확히 미 핵항모나 강습상륙함을 타격할 수 있느냐는 견해도 있지만, 미 해군 입장에선 핵심 자산인 핵항모와 강습상륙함을 DF-21의 위협에 노출시키기는 어렵다.
조종사가 탑승하지 않아 인명 피해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드론으로 DF-21을 비롯한 중국의 해안방어체계를 무력화한 뒤 핵항모와 강습상륙함 전단을 연안에 접근시키는 방안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해군 전문매체 네이벌 뉴스에 따르면, 미 해군은 XQ-58A 무인전투기를 운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작전반경이 3941㎞에 달하는 XQ-58A는 합동정밀직격탄(JDAM)과 레이저유도폭탄 등을 탑재할 수 있다. 대당 가격이 25억~35억 원으로 F-35보다 훨씬 저렴해 재정적 부담도 크지 않다.
XQ-58A를 탑재할 함정으로는 프랑스 나발 그룹의 오션 어벤저(4000t)와 영국 BAE 시스템의 UVX(8000t)이 제안되고 있다.
오션 어벤저는 배의 좌우측에 비행갑판을 갖춘 형태로 함교 뒤쪽에 드론을 수납하는 대형 격납고가 있다. 자체 방어체계가 있어 별도의 호위함정이 필요하지 않다.
UVX는 무인수상정과 잠수정, 극초음속 미사일 탑재가 가능하다. 2개의 비행갑판에서는 무인전투기 2대가 뜨고 내릴 수 있으며, MQ-8C 무인헬기도 운용한다.
미 해군은 ‘미니 드론 항모’을 강습상륙함보다 저렴하게 제작, 항모전단에 앞서 전장에 투입해 적의 장거리 대함 타격전력을 파괴한다는 구상을 고려하고 있다.
◆한국 경항모도 ‘드론 항모’ 검토할 필요 있어
한국은 2030년대를 목표로 수직이착륙 전투기를 탑재하는 3만t급 경항모 건조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유력 기종인 F-35B의 높은 가격 등으로 논란이 그치지 않는 상태다. F-35B는 공군형인 F-35A보다 생산량이 적고 기체 구조가 복잡해 대당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다. 영국도 항모 퀸 엘리자베스호에 탑재할 F-35B를 충분히 구매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KF-21을 함재기로 개조하는 ‘KF-21 네이비’가 대안이 될 수도 있으나 개발비 부담과 기술적 난이도가 높고, 경항모에 수납하기도 어렵다. 5만t급 이상의 중형 항모를 만들어야 탑재가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크기가 작은 드론은 경항모에 많은 수량을 탑재할 수 있다. 접이식 날개 구조와 강제착륙장치를 적용하고, 정밀유도무기 운용이 가능한 무인공격기를 경항모에 탑재하면 멀리 떨어진 적 함정이나 지상 및 공중 표적 파괴가 가능하다.
2010년부터 스텔스 무인전투기 개발을 진행중인 국방과학연구소(ADD)는 다수의 드론을 통합 운용하는 군집드론 기술을 연구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대한항공 등 국내 방산업체들은 다양한 종류의 무인기를 개발하고 있다.
ADD와 방산업계의 기술 개발 성과를 경항모에 맞게 바꾸면, 경항모를 기반으로 한 무인 공대함 및 공대지 작전과 정찰 임무 등에 투입할 수 있다.
미래 전장 추세인 무인화와 더불어 4차 산업혁명 기술 발전을 선도하고,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중국·일본 등 주변국 항모와 차별화된 전력을 만들 수 있다.
무인전투기 형태로 만든 플랫폼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공격용 무장 대신 장거리 감시레이더와 데이터링크 시스템을 장착하면 무인 조기경보기로 사용할 수 있다. 전자전 장비를 탑재하면 무인 전자전기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이들을 한데 묶어 군집비행을 한다면, 인명 피해 없이 작전을 수행하는 길이 열린다.
F-35B 운용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해군은 경항모에서의 드론 운용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으나 기술적 부분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드론을 주축으로 하는 항모전단 건설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도입 및 운영유지비가 고가인 F-35B는 공대공 임무에 맞는 최소 수량만 운용하고, 나머지 작전은 드론이 전담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실제로 항모 퀸 엘리자베스호에 F-35B를 운용하는 영국은 전투와 조기경보 등의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빅센 무인 함재기를 개발해 F-35B와 공동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고질적인 F-35B 수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차원이다.
한국도 경항모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드론 개발도 활발히 진행중인 만큼 영국의 선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어 군 당국의 향후 정책 결정에 관심이 쏠린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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