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을 잃은 정부와 끔찍한 재난은 위험한 조합이다.”
최근 코로나19 4차 대유행을 둘러싼 정치권의 책임 공방은 미국 저널리스트 리베카 솔닛의 통찰을 떠올리게 한다. 솔닛은 저서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재난과 혁명은 서로 닮았다”고 단언한다. 감염병이나 지진 같은 재난이 닥쳤을 때 이기적이거나 무능하거나 엘리트들의 이익에만 몰두한 탓에 국민들의 요구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정부는 전복되거나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신규 확진자가 2000명으로 치닫는 국가 위기 상황에서 불거진 책임 공방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방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방송인 김어준씨가 지난 4월8일 취임 직후 서울형 상생방역 등을 주장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자 김도식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대통령께서 무지와 무능도 모자라 긴장의 끈마저 놓았을 때마다 대유행이 반복됐다”고 맞받아쳤다.
야권의 ‘공동 시정’ 약속 결과물인 김 부시장과 여권 최고 ‘스피커’인 김씨 간 대립은 오 시장이 “공직자가 2인3각 경기를 해야 할 상대 탓을 하는 것은 부적절한 언행”이라고 사과하면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내년 대선과 청해부대 집단감염, 잇단 백신 예약 차질을 불쏘시개 삼아 코로나19 사태에 관한 정치권 공방은 더 첨예해지고 있다.
정치권 공방의 근거와 내용은 메르스가 유행했던 2015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0일 청해부대 집단감염과 관련해 “문재인 정권의 정치 방역, 무사 안일주의가 빚은 대참사”라고 비판했는데 이는 “정부의 불통, 무능, 무책임이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태롭게 했다”는 2015년 6월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주장과 겹친다.
청와대 대응도 6년 전과 빼닮았다. 일부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국난 극복을 위한 대동단결을 주문한다. 문 대통령은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20일), “어려울수록 단합하는 것이 절실한 때”(19일)라고 강조했다. 메르스 사태 초반 “초기 대응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며 “지자체와 긴밀히 협조해 국가적 보건 역량을 총동원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판박이다.
정치권 주문대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각계각층의 노력 사항을 상상해본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소극행정 등을 반성한다면, 대통령이 ‘컨트롤타워’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과한다면, 여야가 초당적 협력에 나선다면…. 대부분 기대난망이다. 재정 당국은 1차 재난지원금 보편·선별 지급 논란 이후 1년이 흘렀건만 여전히 ‘나라곳간’ 탓을 하며 건강보험료에 기초한 선별지급을 고수하고 있다. 대선을 7개월 앞둔 상황에서 대통령과 야권이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 거취에서 타협점을 찾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또 모두의 책임은 어느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데 여야의 ‘통 큰 합의’가 코로나19 극복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복잡한 요인들로 해결책이 보이지 않으면 성취할 수 있는 부분부터 살펴봐야 한다. 예컨대 코로나19 책임 소재를 구체적인 층위에서 따져보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전제는 정치 공세가 아닌 과학 방역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령에서 규정한 청와대와 질병관리청, 지자체 역할과 집행 실태를 따지다 보면 누가 어느 단계에서 무엇을, 왜 잘못했는지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팩트체크의 1호 안건은 김씨가 제기한 ‘오세훈 취임 후 역학조사 인력 감축’ 의혹이 제격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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