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사례
창업자·제품 제작자 다른 경우 많아
미키 마우스는 아이웍스가 만들어
한때 디즈니와 공적 다툼으로 결별
대중 취향 꿰뚫어볼 줄 아는 디즈니
아이웍스 다시 만나 26년 동안 동행
몇 해 전 미국에서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에 대한 대중적 재평가 작업이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각종 발명품으로 큰 부와 명예를 얻은 에디슨은 혼자서만 작업한 것이 아니라 여러 엔지니어를 고용해서 작업했는데, 그렇게 고용한 사람 중에는 동유럽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니콜라 테슬라가 있었다. 한 번은 에디슨이 테슬라에게 자신이 만든 직류 발전기를 개선하면 5만달러를 주겠다고 했는데, 정말로 개선한 제품을 내놓고 돈을 요구하자 “미국식 유머인데 못 알아들었다”며 약속했던 돈을 주지 않았다. 이에 분개한 테슬라가 독립해서 독자적인 발명을 이어갔는데 에디슨은 테슬라의 발명이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경쟁한다는 이유로 흑선전을 해서 테슬라의 성공을 막았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에디슨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았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면서 “사실 에디슨이 그렇게 나빴던 건 아니라”는 반론이 나오면서 지금의 여론은 다소 중립적으로 변하는 듯하다.
에디슨과 테슬라의 관계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미국에서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사례들을 보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창업자와 제품을 실제로 만들어낸 사람이 다른 경우가 제법 많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창업했다고 알려졌지만 초기에 실제 제품을 만들어낸 사람은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이었고, 우연하게도 니콜라 테슬라의 이름을 사용한 테슬라 자동차도 흔히들 일론 머스크가 창업자로 알고 있지만, 실제 창업자는 마틴 에버하드와 마크 타페닝이다. 머스크는 초기에 투자자로 참여했다가 기업을 인수, 경영을 맡은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잘 아는 사람들도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테슬라는 일론 머스크의 ‘작품’이라고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공이 불확실한 기업의 초창기에는 경영 능력이 뛰어난 리더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테슬라 자동차도 머스크가 인수하기 전에는 성공할 가망이 보이지 않는 작은 실험에 지나지 않았고, 내성적인 워즈니악은 잡스가 아니었으면 혼자서 애플을 창업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창업 후에도 워즈니악은 한동안 기존 직장인 HP에서 일하고 있었다.
기술 업종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세계적인 식음료 체인인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역시 창업자와 그 브랜드를 크게 성공시킨 사람들이 다르다. 맥도날드의 창업자는 리처드와 모리스 맥도날드라는 형제였지만, 이 음식점을 인수해서 체인점으로 크게 성공시킨 사람은 레이 크로크였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맥도날드는 사실 크로크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2017년에 개봉한 영화 ‘파운더’에 자세하게 나온다. 1971년에 창업한 스타벅스의 경우는 좀 더 성공적이어서 1986년쯤에는 시애틀에 6개의 매장을 운영했지만, 세계적인 체인으로 성장한 것은 하워드 슐츠가 창업자 세 명으로부터 스타벅스를 인수한 다음에 일어난 일이다.
지금은 세계 최대의 콘텐츠 기업으로 성장한 디즈니도 비슷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창업자 월트 디즈니의 이름을 가진 이 회사는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가장 유명한 캐릭터 미키 마우스를 로고로 갖고 있는, 미키 마우스의 회사다. 미국인들은 디즈니를 ‘하우스 오브 마우스(House of Mouse)’라는 별명으로 부르곤 하는데 그만큼 디즈니라는 기업이 성장하는 데 미키 마우스의 성공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미키 마우스는 창업자 월트 디즈니가 그렸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미키 마우스는 월트 디즈니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사업 파트너 어브 아이웍스(Ub Iwerks)가 1928년에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 두 사람은 아직 십대였던 1919년,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 있는 한 아트 스튜디오에서 일하다가 친해졌고, 3년 후인 1922년 둘은 의기투합해서 래포그램(Laugh-O-Gram)이라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만든다. 디즈니가 경영을 맡고, 아이웍스는 아트 총괄을 담당했지만, 이 회사는 곧 파산했다. 하지만 둘은 로스앤젤레스로 가서 다시 애니메이션 시리즈물을 만들었는데, 그 시리즈에 등장하는 ‘운 좋은 토끼 오즈월드(Oswald the Lucky Rabbit)’라는 캐릭터가 미키 마우스의 원형이다.
훗날 미키 마우스가 큰 인기를 끌게 된 후에는 이 캐릭터는 월트 디즈니가 키우던 쥐를 모델로 했다거나 기차 안에서 갑자기 영감을 받아 만들어냈다는 일종의 ‘신화’가 만들어졌지만,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전기 ‘둘로 나뉜 마우스(A Mouse Divided)’에 따르면 그건 그야말로 신화일 뿐이다. 오즈월드 토끼 캐릭터의 저작권은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가지고 있었고, 디즈니의 두 번째 사업도 잘 되지 않아 다른 애니메이터들이 다 떠난 후 아이웍스와 둘만 남은 상황에서 고민 끝에 오즈월드와 비슷하지만 귀를 짧게 해서 쥐로 만든 새로운 캐릭터, 미키 마우스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은 월트 디즈니가 미키 마우스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이 디즈니를 알아보고 다가와서 미키 마우스를 그려달라고 하면 캐릭터를 만들어낸 아이웍스가 그리고 디즈니가 사인을 해서 줬다고 한다. 아이웍스는 갈수록 디즈니가 공을 다 차지하는 상황이 못마땅해서 한 번은 식당에서 팬이 둘에게 다가와 미키 마우스를 그려달라고 하자 여느 때처럼 자신에게 종이를 건네는 디즈니에게 “네가 직접 그려보라”고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갈등이 이어지면서 결국 어브 아이웍스는 1930년 디즈니 스튜디오를 떠나서 자신만의 ‘아이웍스 스튜디오’를 차린다.
그런데 진짜 예술적 재능은 디즈니가 아닌 아이웍스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가 떠난 후 디즈니 스튜디오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디즈니 스튜디오는 잠시 주춤했다가 바로 회복하면서 다시 성공을 이어갔다. 반면 아이웍스가 세운 스튜디오는 이렇다 할 성공작을 내놓지 못했다. 아이웍스는 예술적 재능이 풍부했을 뿐 아니라, 뛰어난 엔지니어이기도 했고,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애니메이션 기술을 만들어낸 천재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좋아한 것은 남들이 풀지 못하는 어려운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내는 것이었지, 대중의 취향을 꿰뚫어보고 작품을 흥행시키는 것에는 큰 관심도, 재주도 없었다고 한다.
아이웍스가 갖지 못한 그 재주를 가진 사람은 바로 월트 디즈니였다. 애니메이션의 성공에는 아이웍스가 가진 것 같은 뛰어난 그림 실력과 새로운 기술이 중요했지만, 아무리 뛰어난 그림과 기술도 최고의 흥행력이 없으면 빛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10년 만인 1940년 아이웍스는 스튜디오 문을 닫아야 했다. 그걸 본 옛친구 디즈니는 아이웍스에게 다시 돌아와 달라고 손을 내밀었고 아이웍스는 흔쾌히 디즈니 스튜디오로 돌아가 특수효과를 담당했다. 둘은 다시 만난 순간 10년의 반목을 뛰어넘어 다시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업자가 되었고, 이후로 디즈니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26년을 함께 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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