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 방문 계기 규모 확대 추진
해외 문화재 파악·보존사업 지속
제대로 된 전시 통해 韓문화 알려야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2층 남동쪽 방향으로 ‘아시아 미술’ 섹션이 있다. 먼저 복도를 따라 중국 도자기와 불상, 불교 미술품이 전시실 대여섯 개를 차지하고 있다. 전시실 2∼3개 크기의 ‘명나라 시대 안뜰’이 별도로 재현됐고, 또 대여섯 개 전시실에 ‘은둔과 교감의 중국 미술’이란 제목으로 특별전시가 진행 중이다. 중국실만 15개에 가깝다. 일본 전시실도 10여 개에 달한다. ‘일본, 스타일의 역사’란 제목의 특별전시에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특징적인 조각상과 도자기, 회화 등이 전시 중이다.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 미술품 전시실이 6∼7개, 또 미얀마·태국·캄보디아·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미술품 전시실이 5∼6개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 한국 전시실 하나가 겨우 버티고 있다.
한국실은 중국 불교미술 전시실 2개 사이에 어정쩡하게 자리 잡았다. 165㎡(약 50평) 남짓의 전시실 하나 그 자체도 아쉽지만, 중국이나 일본 전시실과 비교하면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중국실, 일본실은 조각상의 음영을 드러내거나 작품을 강조하기 위해 곳곳에 배치된 조명이 인상적이다. 작품 구성이나 배치 등도 흥미롭다. 반면 한국실은 규모도 작지만 지나치게 단조롭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한국 방문객들의 한국실 방문 후기에 ‘실망스럽다’ ‘초라하다’ ‘안타깝다’ 등 내용이 빠지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만하다.
유엔총회를 계기로 뉴욕을 방문한 김정숙 여사가 지난 20일 방탄소년단(BTS),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함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방문했다. 한국실을 찾은 김 여사는 “한국실이 한국과 한국미를 세계인에게 전하는 뜻깊은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 여사도 한국 방문객과 같은 실망감을 느꼈는지 알 수 없지만, 황 장관은 이후 특파원 간담회에서 김 여사의 미술관 방문 결과를 설명하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한국실 규모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미술관 측이 현재 한국실로 쓰는 갤러리보다 넓은 공간을 한국 정부에 제시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2018년을 기준으로 해외 박물관에 설치된 한국실은 23개국 68곳이라고 한다. 그중 절반 가까이가 미국에 있다. 이번에 확장 추진을 발표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한국실은 문체부의 ‘해외 박물관 한국실 운영 지원사업’ 대상 가운데 ‘거점관’이자 ‘우선 지원관’이다. 전 세계 한국실 가운데 손에 꼽을 정도로 ‘훌륭한’ 전시실이고, 한국국제교류재단 지원을 통해 지난해부터 전담 큐레이터가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거점·우선지원관이 이 정도라고 하면 해외 다른 박물관들의 한국실은 어느 정도 수준일지 상상이 어려울 정도다.
해외 박물관 한국실이 순조롭게 운영되고 있는지도 알기 어렵다.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인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의 한국실이 2017년에 문을 닫았다. 당시 한국실 폐관에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이번 한국실 확장 추진 발표 역시 실제 추진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예상하기 어렵다. ‘공짜 전시’는 없다.
세계일보는 2018년 8월부터 2019년 1월까지 ‘해외 우리 문화재 바로 알기’라는 제목으로 해외 문화재 실태에 대해 20회에 걸쳐 보도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018년을 기준으로 국외 문화재가 20개국에 17만2316점이 있는 것으로 파악했는데, 그마저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해외 기관이나 소장자들이 한국 문화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국 문화재인지 모르고, 아예 중국이나 일본 것으로 분류해 놓거나 수장고에 방치하는 일이 부지기수라는 지적도 나왔다.
전시실 면적을 넓히는 것이 대수가 아니다. 해외에 있는 문화재를 조사·연구해 파악하고, 보존하고, 또 제대로 된 전시를 통해 한국 문화를 알리는 것이 핵심이다. 문화재 환수도 중요한 문제다. 체계적으로 진행돼도 모자랄 해외의 한국 문화재 보존과 전시 사업이 영부인의 방문 등을 계기로 한 일회성 이벤트가 돼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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