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가혹행위 은폐 등 정황 규명
폭행→실책 사고로 死因 둔갑도
1787건 중 지금까지 863건 종결

#1. 1984년 사망한 최 소위의 사인은 ‘과로사 또는 청장년 급사증후군’으로 군 기록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최 소위는 교관들의 구타와 가혹행위 때문에 사망에 이른 것으로 드러났다. 교관들이 그의 목에 로프를 맨 채 개처럼 끌고 다녔고, 나무에 묶어두거나 선녀탕이라는 오물통에 들어가게 했다는 것이다. 이는 최 소위의 동기생들의 진술을 통해 확인됐다. 당시 군은 교관들이 최 소위에게 폭행과 가혹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도 묵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 1980년 사망한 공 일병의 경우 군 기록에는 자신의 실책으로 사망한 것으로 기재됐다. 하지만 실상은 선임의 폭행이 사인이었다. 위원회는 간호기록과 병상일지에 공 일병이 외상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법의학 소견 등을 확인했다. 당시 헌병대가 관련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유족의 민원을 무마시키면서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던 정황도 밝혀졌다.
#3. 1950년 실종된 유모 이등중사는 1949년 9월 자원입대한 후 1950년 미복귀로 병적이 말소돼 1959년 모친이 그를 사망신고했다. 위원회 조사 결과 그는 6·25전쟁 발발 시점에 육군사관학교에서 이등중사로 근무 중 전쟁에 참전했고, 1950년 11월25일 평북 덕천에서 실종된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중공군의 대규모 2차 공세로 지역별로 전투가 한창일 때 국군이 전격 철수를 결정한 사실, 유 이등중사의 소속 부대가 아군의 철수 과정에서 청천강 전투에 참전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이 같은 사례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14일 공개한 ‘3년 조사활동보고회’에서 확인됐다. 위원회는 이날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보고회를 개최하고, 사망 원인이 은폐·왜곡됐던 이들에 대한 진상규명 실적을 공개했다.
위원회가 발표한 사례에는 △목격자 증언으로 실체적 진실이 발견된 사례 △전사 사례 △1996~1997년 병·변사자 일괄순직심의 시 누락된 사례 △사망보상금 미지급 사례 △전역 후 사망해 구제받지 못한 사례 등이 다수 포함됐다.

위원회는 법정 접수 시한인 지난해 9월14일까지 모두 1787건을 접수해 지난달 말까지 863건을 종결했다고 발표했다. 진상규명으로 의결된 452건 중 진정 접수 전 순직 결정된 88건을 제외한 366건에 대해 국방부, 경찰청, 법무부 등에 사망 구분 변경 재심사를 권고했다.
송기춘 위원장은 “남은 2년의 위원회 활동 기간에 한 점의 의혹도 없도록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망인과 유족의 아픔을 위로하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다”며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가 체화된 군을 만들기 위한 제도개선 방안도 적극적으로 제안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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