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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중 스크린도어 낀 장애인 ‘아찔’…“우리도 출근길” 항의 쏟아져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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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2-11 23:00:00 수정 : 2021-12-11 19:5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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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 평일 오전 출근 시간대 혜화역서 ‘교통약자법’ 개정 촉구 선전전 이후 탑승 시위
교통 혼잡에 “우리도 출근길이다” 시민들 질타 잇따라
전장연 측, 지난 9일 ‘혜화역 승강기 봉쇄’ 인권위 진정 위해 행진도

 

지난 9일 오전 7시40분 서울 종로구 혜화역 역사 안.

 

전국장애인철폐연대(전장연) 소속 회원들이 하나둘 전동 휠체어를 타고 도착했다. 오전 8시부터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의 연내 개정을 촉구하는 선전전에 참석한 회원들은 30여명의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측의 협조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전동 휠체어를 탄 채 목에 선전 피켓을 건 회원 6명은 “국회에 계류 중인 교통약자법을 연내 개정하라”고 함께 목놓아 외쳤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역 승강장에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의 연내 개정을 촉구하는 선전전을 하고 있다.

 

◆“교통약자법 개정하라” 혜화역 시위서 열차 지연에 시민과 갈등도

 

“당신들 권리만 권립니까? 작작 좀 하세요, 진짜!”

“하, 저 그냥 여기서 내릴게요. 비켜주세요.”

“끌어내리게 할 순 없나요? 업무 방해로 고소할 거예요.”

“우리도 지금 출근길이에요. 생업이 달렸다고요.”

 

이들 회원은 선전전을 마치고 지하철에 탑승하면서 이 같은 항의를 들어야 했다. 붐비는 출근 시간대 휠체어 여러대가 잇따라 탑승하면서 출발이 지연되자 당장 볼멘소리가 날아왔고, 이후 고성이 난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들 회원이 인근 충무로역에 내려 국가인권위원회 청사로 향하는 과정에서도 도로 교통이 혼잡해졌고, 경찰과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앞서 박경석 전장연 상임 공동대표는 선전전을 진행하면서 “지난 6일 우리 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혜화역 2번 출구를 폐쇄한 상황이 개탄스럽다”며 “교통약자법이 개정될 때까지 혜화역에서 선전전을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교통공사가 지난 6일 이들 회원의 시위를 막으려고 예고 없이 혜화역 2번 출구 승강기를 오전 7시30분∼9시 폐쇄한 일을 두고 적잖이 흥분한 모습이었다.

지난 6일 오전 일시 폐쇄된 서울 지하철 혜화역 2번 출구 앞 엘리베이터. 안내문에는 ‘금일 예정된 장애인 단체의 불법시위(휠체어 승·하차)로 인하여 시민의 안전과 시설물 보호를 위해 운행을 일시 중지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박 대표는 “승·하차 시위 없이 승강장에서 선전전만 한다고 사전에 분명히 밝혔음에도 교통약자를 고려하지 않고 이 같은 조처를 했다”며 “결국 우리는 1㎞ 떨어진 한성대입구역까지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 혜화역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지난 6~8일 역사 내에서의 선전전에 이어 이날은 충무로역까지 지하철로 이동하는 행진도 진행했다. 행진 목적은 혜화역 승강기 봉쇄 조치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기 위해서라고 전했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역에서 탑승하다 스크린도어 오류로 열차가 멈춰있다.

 

전장연과 공사 간 갈등은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을 연출했다.

 

이날 오전 8시20분쯤 박 대표의 발언을 마지막으로 전장연 회원들이 일렬로 열차 한칸에 탑승을 시도했다. 출근 시간대 이미 승객으로 가득한 탓에 휠체어는 쉽게 내부로 진입하지 못하면서 출발이 지체됐다. 스크린 도어가 4회 이상 개폐되면서 장애인 회원 한명이 문 사이에 끼는 일도 벌어졌다. 이에 승·하차 승객과 경찰 인력, 공사 직원, 전장연 관계자까지 나서 혼잡을 더해 어수선함이 극에 달했다.

 

전장연 회원들의 강력한 항의로 이내 스크린 도어는 열린 상태로 고정됐고, 휠체어 탄 회원들이 시차를 두고 여러 칸에 탑승하고 나서야 열차가 출발했다. 이 과정에서 지연된 시간은 6분 정도다.

 

소란은 객차 내부에서도 이어졌다. 출발 지연에 뿔난 시민들이 전장연 회원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며 질타를 쏟아냈다.

 

한 남성은 “9시 회의인데 이들 탓에 망했다”며 “당장 끌어내려라”고 고성을 질렀다.

 

이를 필두로 “이번주 내내 왜 바쁜 시간대 꼭 이 난리냐”, “이 많은 이들에게 다 피해를 주고 사회적 약자면 다냐”, “지원받을 건 다 받아가면서 시위하면 좋냐” 등 불만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혜화역 관계자도 이날 “출근이 지체됐다는 등의 민원이 해당 시간대 다수 접수됐다”고 전했다.

 

◆ ‘혜화역 승강기 봉쇄’ 논란 결국 인권위행

전국장애인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 9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에 ‘혜화역 승강기 봉쇄’ 진정을 내기 위해 서울 중구 충무로역에서 출발해 도로로 이동하고 있다.

전장연은 이날 9시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 도착해 ‘혜화역 엘리베이터 봉쇄로 인한 장애인 권리 침해에 대한 진정’을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충무로역에 내려 인권위를 향하는 도로 행진도 순탄치는 않았다. 전장연 측이 도로로 이동하자 경찰이 자진 해산을 명령한 탓이다.

 

종로경찰서 측은 전장연에 미신고 불법집회라고 따졌다.

 

한 관계자는 “당신들 권리도 중요하지만 도로 교통을 방해하지 마라”며 “시위대가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하면 형법 185조 교통방해죄가 적용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경찰의 통제 아래 인권위 앞에 도착한 전장연은 곧바로 기자회견에 들어갔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 지하철 출근 선전전’을 불법시위로 규정, 혜화역 승강기를 봉쇄한 공사를 상대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책임자가 공식 사과하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2001년 경기 시흥 소재 오이도역에서 벌어진 장애인 부부의 리프트 추락사를 계기로 20년간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펼쳐왔지만 체감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전장연 측의 하소연이다.

 

2005년 교통약자법이 제정됐지만 저상 버스 도입 등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조치는 법에 근거한 국가계획조차 15년간 지켜지지 않았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실제 1차 계획에서 2011년까지 전체의 31.5%를 저상 버스로 도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난해 9월 기준 실보급률은 28.4%에 그쳤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 9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청사 앞에서 ‘혜화역 엘리베이터 봉쇄로 인한 장애인 권리 침해에 대한 진정’을 주제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는 “교통약자법 개정안 논의조차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시민들의 차별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오늘 또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며 “오늘 혜화역에서 지하철 타고 오는 내내 끊임없는 언어폭력에 시달렸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이어 “어떤 시민이 ‘작작 좀 하라’ 그러는데, 아직 해야 할 것이 더 남았다”며 “국가가 비장애인 중심으로 정책을 펼치고 있으니 국민도 장애인을 차별하고 멸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비장애인에게는 승강기가 없더라도 계단, 에스컬레이터 등 지하 이동수단이 많지만 나와 같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오로지 승강기가 유일한 지하철 이동수단”이라며 “그것을 봉쇄한 것은 명백한 장애인 차별이므로 인권위는 혜화역의 봉쇄 조치에 대해 반드시 시정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표도 “혜화역 승강기의 일방적 봉쇄로 8일 오전 관련 민원이 71건 이상 접수됐다”며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위배되는 사안일 뿐 아니라 국가배상법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고의적이고 일방적인 행정 처리로 판단된다”고 진정을 제기한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교통약자법의 연내 개정이 어렵다면 최소한 다음 임시 국회에서 우선 처리할 것을 약속해달라”고도 호소했다.

 

이 단체는 혜화역 승강기 봉쇄 조치에 대해 서울교통공사장과 서울경찰청장, 혜화역장, 종로경찰서장, 혜화경찰서장을 피진정인으로 내세워 ▲조사와 재발방지 대책 수립 ▲장애인 인권 침해에 대한 책임자 공식 사과 ▲관련자의 장애인 인권 교육 등을 요구했다.

 

한편 전장연은 교통약자법이 개정될 때까지 평일 오전 8시 지하철 역사에서 선전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글·사진=김수연 인턴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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