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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지하철 ‘기습 시위’…전장연·공사 갈등에 시민들 “아직도” 한숨만 [밀착취재]

입력 : 2022-01-25 23:00:00 수정 : 2022-02-03 08: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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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새해 첫 전장연 지하철 시위로 출근길 지연
전장연 “나도 출근할 거다!” 투쟁 이어가
“권리 싸움에 애꿎은 시민들만 피해” 민원
공사 “지하철 지연에 따른 피해로 손배소 제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달 20일 서울 마포구 공덕역에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연내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장애인 단체의 지하철 ‘기습 시위’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이어져 출근 시간대 열차 운행이 때때로 지연되고 있다. 시민들은 “애꿎은 출근길 직장인 새우등만 터진다”고 불만을 터뜨리는데, 단체 측은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될 때까지 시위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맞서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 측은 단체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확대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등 끝모를 대결 양상이다.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만큼 당장 해결책을 찾기는 요원해 보인다.

 

◆ 전장연 ‘이동권 보장 요구’ 시위에 “애꿎은 시민만 새우등 터져” 불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측은 지난 21일에도 오전 7시20분쯤부터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부터 각 역사 승강장에서 승·하차 시위에 나섰다. 이 바람에 1시간가량 열차 운행이 지연됐다.

 

이는 올해 들어 첫번째 기습 승·하차 시위로, 공사 추산 지난해에만 12차례가 있었다.

 

전장연이 시위를 벌이는 목적은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교통약자법) 개정에 있다. 앞서 지난달 27일 국회 교통위원회에서 저상 버스 도입 확대를 골자로 하는 교통약자법 일부 개정안이 의결됐지만, 특별 교통수단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예산 반영이 ‘의무’가 아닌 ‘임의’ 조항으로 통과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게 이 같은 반발의 주된 이유다. 한마디로 장애인 이동권리를 위한 예산을 증액해달라는 주장이다.


전장연은 기재부의 책임을 촉구하는 한편 지상에서 승강장까지 엘리베이터로 연결도 되지 않는 역사가 있다면서 공사 측에도 포문을 돌리고 있다. 

 

전장연 측이 이처럼 “나도 출근할 거다!”라고 목소리 높이는 가운데 출근길 시민들의 민원도 폭주하는 실정이다.

 

전장연은 지난달부터 오전 8시가 되면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피켓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또 전동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 승·하차를 반복하며 운행을 기습적으로 방해하는 시위도 간헐적으로 벌이고 있다. 당초 전장연은 교통 혼잡 등을 우려해 지하철 시위를 언제 벌일지 사전 예고하기도 했지만, 공사 측이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지난달 6일 혜화역 출구 엘리베이터를 봉쇄한 뒤 기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공사 관계자는 “전장연에서 미리 예고한 시위 장소나 시간이 달라 출근길 시민에게 급하게 공지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며 “시위 시간대 불편 민원도 지속적으로 접수되고 있다”고 전했다.

 

시위 방식에 일부 승객과 단체 회원 간 실랑이나 몸싸움도 빈번해졌다. 지난달 29일 몸싸움을 하다 넘어진 전장연 회원이 울음을 터뜨리는 일도 있었다. 지난달 20일에는 전장연의 한 회원이 “출근 시간에 왜 이러느냐”는 한 시민의 항의에 휠체어에서 내려 스크린 도어와 열차 문 사이에 누워 수분간 울분을 토해 열차 출발이 지연되는 일도 있었다. 서울 왕십리역에서는 전동 휠체어가 열차 내부로 승차하는 과정에서 스크린 도어가 파손되는 등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전장연의 시위 당일 열차에서 마주한 시민들은 “아직도”라며 한숨을 내쉬며 체념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달 20일 서울 천호역 방면으로 서행 중인 열차 안에서 만난 신모(42)씨는 “지난번에도 시위로 지연된 시간대에 탄 적이 있는데 왜 하필 출근 시간대인가 싶다”며 “관심은 받을 순 있어도 공감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직장인 서모(38)씨도 “오늘 오전에 중요한 미팅이 있는데, 내려서 택시 타려 해도 막히는 시간대라 옴짝달싹 못하고 고민 중”이라며 “장애인의 권리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오늘이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면접날일 수도, 꼭 성사시켜야 할 계약날일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 같은 시위 방식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며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최모(69)씨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부에서 손 놓고 있을 게 뻔하다”면서 “애꿎은 우리(비장애인)만 새우등 터지지 않게 공사나 정부에서 이들의 권리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계속되는 민원에 공사 측은 법적 조치에 나섰다. 

 

◆ 공사 “전장연 ‘3000만원+α’ 손배소” VS 전장연 “인권위 진정”

 

공사는 전장연의 반복되는 시위로 손해를 입었다며 3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열차 운행을 고의적으로 방해해 위법성이 인정된다는 판단에서다.

 

공사 측은 이날 “오늘 포함 총 13회에 걸친 기습시위로 인한 손해가 파악된 바 추가 손실을 산출해 법적 조치를 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가 지난달 9일 오전 서울 혜화역에서 선전전을 펼치다 스크린도어 오류로 회원 1명이 문 사이에 끼어 이동하지 못하고 있다.

 

공사 측이 제기한 민사 소장에 따르면 전장연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 등 4명을 상대로 손해배상금 3000만100원을 청구했는데, 지난해 11월23일 서울중앙지법에 접수했다.

 

공사 측은 지난해 1월22일∼11월12일 전장연이 모두 7회에 걸쳐 열차 내에서 전동 휠체어를 탄 채 승·하차를 반복해 고의로 열차 운행을 지연시켰으며, 이로 인해 최장 2시간 9분의 운행 지연과 총 544건의 민원(1~5차 기준)이 발생했다고 명시했다.

 

또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만 규정할 뿐, 반드시 장애인을 위한 이동편의 시설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공사는 법이 규율하는 범위 내에서 엘리베이터 및 리프트를 운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20년 12월 기준 서울 지하철 전체 역사 278개 중 256개는 이미 지상 엘리베이터 설치가 완료됐으며 나머지 22개 중 18개는 올해까지 공사가 완료될 예정이라는 게 공사의 주장이다.

 

공사 관계자는 “이런 사실을 이미 전장연 측에 꾸준히 피력해왔지만, ‘모든 역 설치’만 주장하며 교통을 방해하고 있다”면서 “열차 지연으로 인한 반환금, 방역비, 인건비 등 손실비를 산출해 청구했는데 이후 추가될 수 있다”고 전했다.

 

전장연은 공사 측 주장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올해 공사 본예산에 엘리베이터 설치분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시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추가로 설계 및 공사가 필요한 13개역에 약 200억원의 예산이 책정됐어야 하지만, 지난 10월 공개된 ‘지하철 엘리베이터 역사 2022년 예산 현황’에 따르면 설계작업이 완료된 8개역을 뺀 나머지에 대한 사업비는 전액 삭감됐다고 주장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달 20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소재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자택 앞에서 ‘기재부 장애인 이동권 보장 반대 규탄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지난달 20일 지하철 선전전 후 전장연이 서울 마포구 공덕역 인근의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자택 앞에서 시위를 이어간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한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서울시는 2022년까지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기재부와 공사가 예산 반영 책임을 다해라”고 촉구했다.

 

전장연은 공사의 소송 제기에도 투쟁을 이어갈 예정이다. 기재부가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 방침을 명확히 밝히고,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될 때까지 혜화역 지하철 승강장 등에서 시위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우장규 조직국장은 “장애인 이동권 확보와 엘리베이터 설치 약속이 지켜질 수 있도록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며 “서울 지하철 내 엘리베이터 100% 설치는 서울시와 공사가 2000년대 초반부터 한 약속이지만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을 앞으로 재판에서 충실히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지난달 6일 공사 등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을 제기하는 등 맞대응에 나섰다. 전장연의 지하철 ‘불법 시위’를 막겠다며 공사 측이 혜화역 엘리베이터를 폐쇄한 데 따른 반발로, 재발 방지 대책과 책임자의 공식 사과 등도 요구해놓은 상태다.


글·사진=김수연 인턴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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