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당선인 공약 조속 입법할 것”
법무부 “범죄 피해자 차등 보호
적정성에 대한 검토 필요” 반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4일 법무부의 ‘반기’에도 윤석열 당선인의 대선 공약인 일명 ‘박원순·오거돈 방지법’(권력형 성범죄 은폐 방지 3법)의 조속한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재인정부에서 성비위로 물러난 더불어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을 겨냥한 법안을 이슈화하려는 의도다. 172석 거대 야당이 될 민주당의 협조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문제 단체장들의 행적을 부각해 선거 분위기를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전략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차승훈 인수위 부대변인은 이날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에서 브리핑을 열고 “법무부가 업무보고에서 권력형 성범죄 은폐 방지 3법에 대해 추진이 곤란하다며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박범계 장관이 윤 당선인의 사법개혁 공약에 공개 반대 입장을 표명한 일로 인수위로부터 한 차례 업무보고를 ‘퇴짜’ 맞은 뒤 지난달 29일 보고를 했다.
차 부대변인은 “보호 감독자에 의해 가해지는 권력형 성범죄 사건은 조직적으로 은폐·축소된다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법무부는 형평성 측면에서 더 중한 범죄나 유사 범죄 피해자 보호에 차등을 두는 적정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수위는 윤 당선인의 공약인 권력형 성범죄 은폐 방지 3법의 조속한 입법을 위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국회를 설득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인수위는 새 정부 출범 후 새로운 법무장관이 임명되면 입법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의 한 관계자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법무부는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우려가 된다며 반대했는데, 당선인의 공약을 대놓고 추진이 곤란하다고 해 버리면 우리(인수위)도 곤란하다”며 “새 정부의 법무장관이 취임하고, 여론이 받쳐 주면 민주당도 (입법을 마냥)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윤 당선인은 지난 대선 기간 “위계, 권력에 의한 강간이나 성추행은 형량이 가볍고 성희롱은 과태료, 권고 외에 형사처벌 규정이 없다. 신속한 피해자 보호 조치도 미흡하고, 가해자가 엄중 처벌을 받지 않고 조직생활을 지속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한다”며 조속한 입법을 약속했다. ‘선출직 공무원 등의 성범죄조사위원회 설치에 관한 법률안’,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안’,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 3개 법안이다.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이었던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등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에서 대변인으로 활동한 전주혜 의원이 지난해 1월 3개 법안을 냈지만, 국회 각 상임위원회에서 심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법안 계류와 이번 법무부의 검토 의견 등을 두고 인수위 안팎에선 민주당과 민주당 소속 현역 의원인 박 장관이 해당 법안의 이슈화를 부담스러워하기 때문 아니냔 말도 나오고 있다. 이 관계자는 “민주당도 (당 소속) 단체장이 3명이나 걸려 있으니 꺼림칙할 것”이라며 “법안 자체가 권력형 성범죄 은폐를 막기 위한 것인데 이걸 반대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처벌 면제… 민주당 ‘법안 명칭’ 거부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법무부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공약인 권력형 성범죄 은폐 방지 관련 3법(박원순·오거돈 방지법)을 놓고 대립하고 있다. 인수위와 법무부의 충돌은 윤 당선인의 장관 수사지휘권 폐지 공약을 둘러싼 신경전 이후 두 번째이다.
박원순·오거돈 방지법을 둘러싼 양측의 갈등은 6월 지방선거와 맞물려 여야 간 정치적 쟁점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성 비위로 낙마한 점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슈화할 공산이 커서다. 의석수 부족으로 끝내 법안 처리가 불발되더라도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내로남불’ 행태를 부각할 명분을 쥐게 되는 셈이어서 잃을 게 없다는 분위기다.
◆이름부터 ‘박원순·오거돈 방지’… “민주당, 꺼리는 듯”
4일 인수위에 따르면 법무부는 업무보고에서 윤 당선인의 대선 공약인 박원순·오거돈 방지법에 대해 ‘추진 곤란’ 의견을 냈다. 인수위는 ‘박범계 법무부’가 당선인의 공약에 어깃장을 놓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이 법은 고위공직자의 성범죄 발생 시 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피해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에게 사실적시 명예훼손 처벌을 면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중대한 과실로 재·보궐선거 사유를 제공한 정당이 후보자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 등도 포함됐다. 법관 출신인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이 지난해 1월 발의했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전 의원은 해당 법 이름을 ‘박원순·오거돈 방지법’이라고 했다. 성범죄에 대한 늑장 사과 및 ‘피해호소인’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민주당 입장에선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칭이다. 국민의힘에선 “민주당이 논의하기 불편해하는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권력형 성범죄는 민주당 입장에선 지난해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의 결정적 패배 원인이 된 뼈아픈 이슈다. 박·오 전 시장은 물론 유력 대선 잠룡으로 거론됐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도 비서 성폭행으로 유죄를 확정받았다.
인수위 관계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했다. 이어 “국회가 법안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원안대로 통과될 수도 있는 것”이라며 “일단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공식 입장을 정리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대선 당시 민주당에서도 권력형 성범죄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만큼 대놓고 반대하진 않는 분위기다. 민주당 관계자는 통화에서 “국민의힘에서 발의는 했지만, 해당 법안을 우선 처리하자는 얘기는 없었다”며 “지난해 크고 작은 사건들로 인해 여성가족위원회가 계속 파행되면서 회의가 별로 안 열린 탓도 있다. 제의가 오면 논의가 이뤄지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법안을 발의한 전주혜 의원은 세계일보 통화에서 “피해자 입장에서 성폭력 사건은 신고까지 가는 경우가 많지 않다”며 “피해 여성과 그들을 지원하는 단체의 목소리를 담아 발의한 법이다. 국회가 논의 테이블에 올려야 하는 사안”이라고 했다.
◆“취지는 환영… 입법화는 의문”
법무부가 이 법을 반대하는 것은 법의 안정성과 형평성 측면에 대한 고려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현행법에 따르면 사실을 공표했어도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점이 인정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즉 권력형 성범죄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사실을 알린 것만으로도 자칫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역고소 당할 수 있다. 실제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 당시 이 점을 의식한 피해 여성들의 고민 상담이 적잖았다고 서초동 법조타운의 변호사들은 말한다. 그런데 사실적시 명예훼손 적용을 권력형 성범죄 피해자에게만 예외로 둘 경우 다른 범죄 피해자와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법무부 논리다.
인수위가 입법을 추진하는 데 대해 법조계에서는 긍정적 반응을 보이면서도 우선 기존 법을 잘 운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 전 시장의 사건 피해자 측 김재련 변호사는 “취지 자체는 환영할 만하다”면서도 “권력형 성범죄 피해자가 가장 힘든 건 (가해자) 지지자들, 소속 정당 유력 정치인들에 의한 지속적인 2차 가해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규정이 이미 있어서 그걸 실효적으로 잘 접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법률사무소 삼정 장윤미 변호사는 “성 관련해서만 면죄부를 주는 것은 법무부 말대로 형평성 문제가 있다”며 “어떤 사안에 따라 법이 적용되거나 안 되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입법화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