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비하하는 ‘외눈박이’, ‘절름발이’ 등의 표현을 쓴 전·현직 국회의원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은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단, 재판부는 “이런 표현은 장애인에 대한 혐오감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표현”이라며 “적절치 못하다”고 피고들을 꾸짖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13부(재판장 홍기찬)는 15일 조태흥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활동가 등 5명이 곽상도·이광재·허은아·조태용·윤희숙·김은혜 전·현직 국회의원을 상대로 제기한 장애인차별구제 소송을 원고 패소 판결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에 대한 소송은 기각했다.
피고들은 2020년 6월부터 지난해 3월 사이 ‘외눈박이’, ‘절름발이’ 등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을 썼다. 곽상도 전 의원은 2020년 6월 페이스북에 ‘한쪽 눈을 감고, 우리 편만 바라보고, 내 편만 챙기는 ‘외눈박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썼고,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0년 7월 국회 상임위원회 중 “경제부총리가 금융 부분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면 정책 수단이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2월 기자회견에서 “국민을 우습게 아는 것이 아니라면 집단적 ‘조현병’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라는 발언을 했다.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과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해 3월 페이스북에 각각 ‘문재인 대통령의 갈팡질팡 대일 인식, 그러니 ‘정신분열적’이라는 비판까지 받는 것 아닌가?’, ‘다른 것도 아니고 외교 문제에서, 우리 정부를 ‘정신분열적’이라고 진단할 수밖에 없는 구민의 참담함이란’이라는 표현을 썼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3월 논평을 하며 “3000원짜리 캔맥주, 만 원짜리 티셔츠에는 친일의 낙인을 찍던 사람들이 정작 10억원이 넘는 야스쿠니 신사 뷰 아파트를 보유한 박영선 후보에게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고 했다.
조 활동가를 비롯한 원고들은 지난해 장애인의 날 이들에게 1인당 1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들은 “피고들의 발언은 장애인들에게 상처와 고통, 수치심, 모욕감과 좌절감을 줄 뿐만 아니라 장애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박 의장을 상대로는 해당 의원들의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회부와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에 장애인 모욕 발언 금지 규정의 신설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위 의원들의 발언이 장애인에 대한 혐오감을 일으킬 우려가 있어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손해배상 책임은 없다고 봤다. 정치적 표현에 대한 명예훼손·모욕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인정하면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공허해진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정치적 표현에 대하여 명예훼손이나 모욕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인정하거나 그 경계가 모호해지면 헌법상 표현의 자유는 공허하고 불안한 기본권이 될수밖에 없다”며 “각 표현이 장애인들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관련 장애인 개개인에 대한 모욕이 된다고 평가하게 되면 모욕죄 및 모욕으로 인한 불법행위의 성립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 피고들이 장애를 이유로 장애인 또는 장애인 관련자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비하를 유발하는 언어적 표현이나 행동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 행위로 판단하지 않았다.
박 의장에 대한 청구는 “원고들과 박 의장 사이 분쟁이라고 할 수는 없다”며 각하했다.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재판부는 이 같은 발언을 강하게 꾸짖었다. 재판부는 “피고들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반영한 언어습관에서 누구보다도 먼저 벗어나 인권 존중의 가치를 세우고 실천하는 데 앞장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이 사건 각 표현은 적절치 못하고 이로 인해 원고들과 같은 장애인들은 상당한 상처와 고통, 수치심 등을 느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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