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명의 사망자, 151명의 부상자를 낸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가 방화범에 대해 증언했다.
지난 5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돌아봤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방화범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는 목격자 전융남씨(81)는 “운명도 희한하다. 운명도 기구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지금도 그것만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 자다가도 일어난다. 깜짝 놀라고. 그런 큰일이 내 앞에서 저질러졌는지, 참 한심하고 원통하다”고 말했다.
19년 전인 2003년 2월18일 62세였던 전씨는 대구 우체국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겨우 자리에 앉은 그는 맞은편 앉아 있던 남성을 떠올렸다. 그는 “눈에 띄었다. 파란 운동복을 입고 인상이 참 좋았다. 산에 갔다 오고 운동도 하고 그러는가 보다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약수통을 들고 있던 맞은편 남성은 갑자기 호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켰다고. 전씨는 “반사적으로 라이터 불을 왜 키냐고 했다. 말도 안 하고 껐다. 이상한 사람이다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중앙로역에서 내리며 방화범을 돌아봤고, 그의 바지에 불이 붙자 양복을 벗어 사람들과 함께 불을 껐다고도 설명했다.
방화범은 불을 붙인 후 빠져나왔지만 지하철에 그 불이 옮겨 붙었고, 방화범이 들고 있던 2리터 약수통에는 휘발유가 들어 있던 탓에 전동차 2대가 화마에 휩싸였다.
경찰 조사 결과 방화범은 범행 2년 전인 2001년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극단 선택을 하기 위해 이같은 짓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종합사령실의 미흡한 대처 및 불에 잘 타는 소재로 만들어진 당시 지하철 안전기준도 대형 참사를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방화 직후 화재 사실을 확인한 1079호 열차 기관사는 열차에 비치된 소화기로 진압을 시도했으나 초기진화에 실패, 승객들과 함께 대피했다.
그러나 1080호의 기관사 최 모씨는 승객들에게 "대피하라"는 지시를 내린 뒤 마스터키를 뽑고 탈출, 열차 전체의 전기 공급을 담당하는 마스터키를 뽑음으로써 전 열차의 출입문이 닫히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과적으로 승객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고립되고 만 것.
앞서 박남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도 tvN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당시의 참상을 전한 바 있다.
박 원장은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준비요원으로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던 때 ‘큰 불이 났다. 내려가라’라는 말을 들었다”며 대구 지하철 참사를 언급했다.
그는 “원래 지하철의 의자는 방염 처리가 되어 화재가 났을 때 불을 지연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사람의 온기, 기름기와 만나면서 방염 성능이 제로가 됐다. 그래서 의자에 불을 붙이니 삽시간에 벽면을 차고 불이 번졌다”고 대형 참사가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래 불이 났던 1079호 열차 안의 분들은 사망자가 거의 없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오던 열차에 계셨던 분들이 대부분 사망했다”며 “기관사들끼리의 소통이라든지 사령실하고의 소통이 제대로 됐다면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 같다”는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한편 방화범인 김대한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진주 교도소에서 복역 중 지난 2004년 8월 지병으로 사망했다. 1080열차 기관사는 사후 안전 관리 문제로 금고 5년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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